금지약물 복용으로 벼랑 끝에 몰렸던 ‘피겨 스타’ 카밀라 발리예바(16·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가 극적으로 회생 기회를 얻었다.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14일 러시아반도핑기구(RUSADA)가 도핑 금지 규정을 위반한 발리예바의 잠정 출전 중지 징계를 철회한 것과 관련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세계반도핑기구(WADA),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이 제기한 이의 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따라 발리예바는 15일 열리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 출전한다. 하지만 이미 도핑 꼬리표가 붙은 상황이어서 이번 올림픽 결과를 두고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CAS는 13일(현지시간) 오후 8시34분부터 중국 베이징 시내의 한 호텔에서 청문회를 온라인으로 열었다. 청문회는 이튿날 오전 2시10분까지 약 6시간 동안 이어졌다.
청문회가 끝난 뒤 CAS는 “극히 제한된 사실에 기초해 이 사건 관련 법률을 고려한 결과, 발리예바에게 잠정 자격정지 처분이 부과되면 안 된다고 결정했다”고 밝혔다. CAS는 미성년자인 발리예바가 WADC 규정에 따른 보호대상자라는 점, 올림픽 기간에 나타난 양성 반응이 아니라는 점이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WADA 규정에 따르면 만 16세가 되지 않은 발리예바는 출장 정지 등의 처분이 경감되는 보호 대상이다.
발리예바는 국제대회에서 피겨스케이팅 신기록을 연달아 갈아치우며 ‘피겨 신성’으로 떠올랐다. 쇼트프로그램(90.45점), 프리스케이팅, 총점(272.71점) 등의 세계기록을 모두 그가 세웠고 여자 싱글 세계 랭킹 1위에도 올라 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유럽선수권대회 때 제출한 소변 샘플에서 금지약물 성분인 트리메타지딘이 검출됐다. 이는 협심증 치료에 쓰이는 약물로, 흥분 효과를 일으켜 WADA에서 금지약물로 지정돼 있다.
발리예바의 샘플 검사 결과는 제출 6주 만인 지난 8일 RUSADA로 통보됐다. 공교롭게도 발리예바가 이번 대회 피겨 팀이벤트 금메달을 딴 다음날이었다. RUSADA는 발리예바에게 잠정적으로 선수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발리예바의 이의제기를 곧바로 수용해 자격정지 처분을 철회하고 올림픽 출전을 용인했다. 이날 CAS에서도 발리예바의 손을 들어주면서 정상적으로 메달에 도전하게 됐다.
외신들은 미성년자인 발리예바가 코치진을 통해 금지약물을 복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발리예바는 안나 셰르바코바(18), 알렉산드라 트루소바(18)와 함께 예테리 투트베리제(48·러시아)의 지도를 받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이번 올림픽의 강력한 메달 후보로 꼽힌다. 셰르바코바와 트루소바에게도 의혹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러시아 스포츠계의 행태도 다시 한번 도마에 오르게 됐다. 러시아는 2012년부터 국제 대회에서 선수들이 조직적으로 금지약물을 복용하고 도핑 테스트 결과를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올림픽에도 러시아 선수들은 ROC 소속의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약물 스캔들이 터진 것이다.
발리예바의 출전을 허락한 CAS 결정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피겨 여왕’ 김연아(32)는 자신의 SNS에 “도핑을 위반한 선수는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 이 원칙은 예외 없이 지켜져야 한다”며 “모든 선수의 노력과 꿈은 똑같이 소중하다”고 밝혔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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