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 7과 3의 예술] 찰나의 빛과 긴 어둠, 그리고 영원한 영광···렘브란트

입력 2022-02-14 17:20   수정 2022-02-15 00:05


가족, 친구 등과 단체 사진을 찍을 때면 어떤 자세를 취할지 고민이 된다. 예전엔 포즈가 대체로 정해져 있었다. 일렬로 쭉 서서 같은 자세로 찍었다. 이젠 각양각색으로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한다. 그래서인지 전에 비해 더 재밌고 생생한 단체 사진들이 많아진 것 같다.

미술에서도 이런 변화를 일으켰던 인물이 있다.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렘브란트 판 레인(1606~1669)이다. 그의 대표작 ‘야경’은 민병대의 의뢰로 그린 단체 초상화다. 하지만 단체 초상화라기보다 민병대가 출격하기 직전의 순간을 포착한 것처럼 다양한 포즈와 표정을 담아냈다. 그는 여기에 또 다른 마법도 더했다. 빛과 어둠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키아로스쿠로’ 기법을 접목해 생동감을 극대화했다. 공연에서 무대 위 특정 인물을 유독 밝게 비추듯 그림에도 이런 기법을 활용한 것이다.

빛과 어둠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마법으로 ‘빛의 마술사’라고도 불렸던 렘브란트. 그의 인생은 작품과도 많이 닮았다. 빛과 어둠 모두를 품고 있는 그림들이 곧 렘브란트였으며, 렘브란트 스스로가 곧 작품 자체가 되기도 했다.
◆신념으로 지킨 빛의 마술
렘브란트의 미술 인생은 출발이 꽤 좋았다. 방앗간집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역사화가 피러트 라스트만의 공방에서 공부하며 다양한 기법도 익혔다. 26세엔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가 갑자기 큰 호평을 받으면서 그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초상화가로 등극했다. 이 작품도 외과 의사들을 그린 단체 초상화다. 그런데 단순히 의사들을 줄 세워 놓고 그리지 않고 해부학 수업을 듣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렸다.

그의 인생에 찾아온 빛은 강렬했지만 너무도 짧았다. 이후 길고도 깊은 어둠이 찾아왔다. 오늘날 그의 대표작이자 명작으로 꼽히는 ‘야경’ 때문이었다. 그는 36세에 완성한 이 작품으로 엄청난 항의에 시달렸다. 작품 속 인물들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큰 것이 문제였다. 빛이 가득한 곳에 있는 인물들의 모습은 크고 얼굴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반면 어둠에 가려진 인물들은 대체로 작고,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었는데 누구는 멋있게 그려졌고 누구는 볼품없이 나왔다는 항의가 빗발쳤다.

하지만 렘브란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빛과 어둠은 그의 작품의 생명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수정 요청에도 그는 딱 잘라 말했다. “미술 작품은 작가가 끝났다고 했을 때 끝난 것이다.”
◆자화상으로 스스로를 직시하다
결국 그는 ‘야경’으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 많던 초상화 문의가 뚝 끊어져 극심한 경제적 위기에 처했다. 개인적으로도 큰 고통을 겪었다. 부인과 다섯 아이 중 네 아이가 잇달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했다. 그중에서도 자화상으로 그만의 예술세계를 완성했다. 그는 2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100여 점에 달하는 자화상을 남겼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엔 그의 인생 자체가 펼쳐져 있다. 그가 성공 가도를 달리던 30대에 그린 자화상에선 큰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한껏 차려입고 중후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반면 40대 자화상은 허름한 옷을 입은 채 굳은 표정을 하고 있다. ‘야경’ 이후 경제적으로 힘들어진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60대가 되어 그는 ‘제욱시스로서의 자화상’이란 작품을 남겼다. 고대 그리스의 전설적인 화가 제욱시스의 얼굴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그린 작품이다. 렘브란트는 그림에 온갖 풍파를 겪은 자신의 얼굴을 그리면서도, 초라하고 늙은 스스로를 받아들인 듯 모든 것을 해탈한 웃음을 제욱시스의 얼굴에 녹여 표현했다.

렘브란트의 인생은 이처럼 찰나의 빛, 그리고 길고 긴 어둠으로 이뤄졌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만의 신념을 지키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직시했다. 그 덕분에 렘브란트는 사후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로 재평가받고, 오늘날까지 영원한 영광을 누리고 있는 게 아닐까.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7과 3의 예술’에서 7과 3은 도레미파솔라시 ‘7계음’, 빨강 초록 파랑의 ‘빛의 3원색’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큰 감동을 선사하는 예술가들의 삶과 철학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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