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이 CJ대한통운 본사를 무단 점거하고 농성한 지 14일로 닷새째가 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기물 파손·폭력이 벌어져도 “노사 문제”라며 해산은커녕 수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관할 부처인 고용노동부 역시 “경찰이 단속할 사안”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두 기관이 손을 놓은 새 CJ대한통운은 출혈이 커져 경영 사정이 악화할 것이란 전망이 증권가에서 잇따라 나오고 있다.
택배노조는 지난해 12월 28일부터 총파업을 벌이고 있다. “사회적 합의에 따라 이뤄진 택배요금 인상분 3000억원을 사측이 과도하게 차지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택배노조는 사측이 계속 대화를 거부할 경우 오는 21일부터 택배사 전체로 파업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CJ대한통운에 따르면 점거 농성이 벌어진 닷새 동안 노조원들은 건물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마스크를 벗은 채 윷놀이를 벌였다. 경찰관에게 욕설을 하거나 망치로 직원들을 폭행·위협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CJ대한통운은 택배노조를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서울 중구청에 14일 신고했다.
“고용부가 불법 여부를 판단해야 대응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은 “이번 택배노조 점거는 노사 간의 문제이고 대화로 해결하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강제해산 가능성을 배제했다.
법조계에서는 “경찰이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고용부의 적법성 판단 여부를 떠나 폭력시위가 정당한 노동쟁의로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행 노동조합법은 노동쟁의 과정에서 폭력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한 노동법 전문 변호사는 “지금까지 택배노조 점거 과정에서 벌어진 폭력만으로도 현행범 체포와 강제해산 조치가 가능하다”고 봤다.
법조계에선 고용부도 경찰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택배업은 택배사가 대리점과 집하·배송 계약을 맺고, 대리점이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와 계약을 맺는 구조다.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는 택배기사와 직접 계약을 맺은 대리점이다. 하지만 고용부 산하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해 6월 CJ대한통운을 사용자로 인정하고 “택배노조와 교섭하라”고 판정했다.
이를 근거로 택배노조가 본사인 CJ대한통운에 직접 협상을 요구하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번 택배노조 점거는 형법상 구성요건이 분명해 경찰이 판단해 단속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태는 CJ대한통운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게 증권업계의 시각이다. 삼성증권은 14일 CJ대한통운에 대한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보유’로, 목표주가는 19만원에서 14만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신영증권, 미래에셋증권 등도 일제히 목표주가를 낮췄다. 김영호 삼성증권 연구원은 “택배노조 파업 장기화로 물량 감소가 불가피한 데다 이탈 고객을 불러오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길성/곽용희/장강호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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