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현지시간) 열린 세계 최대 패션쇼 ‘뉴욕 패션 위크’. 메인 스테이지인 ‘스프링 스튜디오’에서 K패션 브랜드 ‘그리디어스 바이 틸다’가 선보인 2022 가을·겨울(FW) 컬렉션의 주인공은 디자이너도, 모델도 아닌 인공지능(AI) 기반 아티스트였다. 이름은 틸다(Tilda). 이날 모델들이 입고 나온 200여 벌의 의상은 틸다가 창작한 3000여 장의 패턴과 이미지를 기반으로 제작해 주목을 끌었다.
틸다는 LG AI연구원이 초거대 AI ‘엑사원(EXAONE)’으로 구현한 첫 AI 기반 인간이다. 지금까지 나온 가상 인간들과 달리 스스로 학습해 사고하고 판단한다.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고 인간과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도 있다. LG AI연구원은 지난해 5월 디자이너와 협업 가능한 창조적 초거대 AI를 개발한다고 밝혔고, 이번 뉴욕 패션 위크에서 틸다를 공개했다.
틸다는 그리디어스 쇼에서 그리디어스 대표인 박윤희 디자이너와 함께 ‘금성에서 핀 꽃’이란 주제로 디자인한 의상을 선보였다. 그리디어스는 비욘세, 패리스 힐튼 등 스타들이 즐겨 입어 유명해진 브랜드다.
이번 협업은 ‘무엇을 그리고 싶니?’ ‘금성에 꽃이 핀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에 틸다가 사람처럼 다각도로 생각하며 기존에 보지 못한 새로운 이미지를 창작하면, 이에 영감을 받은 박 디자이너가 디테일을 더해 의상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틸다가 창작한 꽃 이미지를 패턴으로 활용하거나 틸다가 만든 물결무늬 등의 이미지를 디자인에 적용했다.
박 디자이너는 “새로운 디자인과 영감을 찾기 위해 과거엔 몇 달 전부터 수십 명의 디자이너와 컬렉션을 준비해야 했는데, 이번에 틸다와 작업하며 한 달 반 만에 모든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며 “틸다만의 창조성과 인간의 감정을 통해 영혼의 옷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틸다는 초거대 AI가 시각 분야 창작에 성공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지금까지 AI는 주로 언어 모델을 기반으로 소설이나 에세이, 칼럼 등 텍스트로 된 콘텐츠를 창작해왔다. 시각 분야 창작이 확장되면 예술작품과 디자인 이미지까지 AI의 활용 범위가 넓어진다. LG는 “틸다는 언어 텍스트뿐 아니라 맥락까지 이해할 수 있는 ‘멀티 모달’ AI를 적용해 아예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틸다의 기반인 초거대 AI 엑사원은 세계 최대 수준인 말뭉치 6000억 개 이상, 텍스트와 결합된 고해상도 이미지 2억5000만 장 이상의 데이터를 학습했다. LG AI연구원은 이를 토대로 틸다 외에 제조·연구·서비스·교육·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을 돕고, 인간과 협력하는 전문가 AI 인간을 선보일 계획이다.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은 “AI가 창의력과 상상력이 필요한 분야에서도 인간과 협업할 수 있다는 점을 이번에 보여줬다”며 “올해 FW 시즌에 틸다가 디자인한 의상을 오프라인에 선보이고 메타버스 체험행사도 열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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