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과 입학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이제 막 성인이 돼 사회인으로 첫 발을 뗀 이들에게 뜻 깊은 선물을 고민하신다면 시계만한 것이 없습니다. 맥박과 함께 움직이는 시계는 필요한 시간을 알려주는 요긴한 도구로써 매 순간 변화하는 인생을 오랫동안 함께 할 것이며, 혹시 고장이 나더라도 고쳐 쓸 수 있으니까요. 스마트 기기들이 진화하고 있지만 아날로그 기계식 시계의 매력은 여전합니다. 500만원대 이하의 기계식 시계들을 사적인 취향으로 골라봤습니다.
현재 트렌드에 부합하는 신제품 중에는 옛 시계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이 많습니다. 그 중 오랜 기간 착용해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 기계식 무브먼트를 탑재하고 가격대는 500만원대나 그 이하일 것, 포멀한 스타일부터 캐주얼한 스타일까지 모두 잘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골랐습니다. 남녀노소 모두 착용할 수 있는 시계들입니다.
1. 티쏘 'PRX 파워매틱 80'
아날로그 방식의 기계식 시계로 넘어가기 전에 작은 동전전지로 동력을 얻는 쿼츠 시계부터 차근차근 경험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티쏘는 스와치 그룹 소속의 브랜드로 1853년 설립, 169년이나 되는 브랜드입니다. 그만큼 매우 다양한 형태와 스타일을 갖췄고 가격도 적당한 시계들이 많은 편이죠. 2021년에 소개한 PRX는 1970년대 유행한 레트로 스타일을 재현한 것으로, 금속 밴드로 된 스위스산 시계지만 45만원이라는 합리적 가격을 책정해 시계 애호가들도 찬사를 보낸 제품이었습니다. 기계식으로 바로 가고 싶다면 돈을 조금만 더 보태면 PRX 파워매틱 80 시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파워매틱 무브먼트는 80시간의 동력 축적을 보장하는 스위스산 기계식 자동 무브먼트입니다. 동급의 무브먼트를 탑재한 시계들이 대부분 100만원을 넘는 가격인데 반해 티쏘 PRX 파워매틱 80은 85만원이고 스타일만 보면 1000만원대 시계 못지 않은 디자인을 갖고 있죠. 처음 나왔던 1970년대 당시에는 매우 스포티한 디자인이었지만 지금은 아주 클래식하다고 여겨지는 디자인입니다.
2. 오리스 '빅크라운'
오리스도 항공 역사의 여명기인 1904년에 탄생한 유서 깊은 브랜드로 꼽힙니다. 1910년에는 조종사용 시계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1938년엔 지금까지 오리스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빅크라운 시계를 선보였습니다. 이름 그대로 크라운이 커다란 시계를 말하는데 비행기 조종사가 장갑 낀 손으로 시계를 조작할 수 있도록 배려한 디자인이 특징입니다. 케이스 소재는 스틸과 함께 최근 인기가 많은 브론즈로도 나왔습니다. 사실 브론즈 소재는 시간이 지날수록 산화되어 파티나라 부르는 녹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초심자가 접근하기는 쉽지 않지만 세월의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오리스 빅크라운 포인터 데이트 80주년 기념판은 다이얼 가장자리에 별도의 시곗바늘로 날짜를 표시합니다. 작년, 올해까지 시계업계를 강타한 아름다운 녹색 다이얼에 브론즈 케이스, 코인 베젤과 돌리기 쉬운 커다란 크라운을 가졌습니다. 오리스의 기계식 자동 무브먼트를 탑재했고 가격은 230만원입니다.
3. 론진 '스피릿'
시계 브랜드가 거대한 그룹에 소속돼 있다면 그룹 내 공조를 통해 저렴한 부품 수급과 안정된 사업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긴 합니다. 하지만 소속 브랜드들끼리 계급화를 피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죠. 론진의 경우 앞서 티쏘와 마찬가지로 매우 오랜 기간 놀라운 역사를 가졌음에도 1983년 스와치 그룹으로 들어가면서 브레게, 블랑팡, 오메가 등의 브랜드보다 낮은 가격대의 시계를 선보이는 위치에 배치됐습니다. 물론 덕분에 우리는 가성비 좋은 시계들을 접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무브먼트는 ETA에서 만든 스위스산이라 믿을 만하고 디자인만 고르면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레전드 다이버, 헤리티지 클래식, 최근 신제품을 추가한 스피릿 컬렉션에 시선이 갑니다. 론진 스피릿은 스틸이 아닌 티타늄 소재로 매우 가볍고 금속 밴드로도 쉽게 교체할 수 있습니다. 천으로 된 나토 밴드 몇 가지 색을 저렴한 가격에 구비해놓고 교체해주면 매일 새 시계처럼 착용할 수 있습니다. 케이스 지름 40㎜는 360만원, 42㎜는 370만원입니다.
4. 튜더 '블랙 베이'
명품 브랜드 매장에이 문을 열리자마자 입장하기 위해 달려가는 오픈런. 샤넬, 루이 비통 등 패션 브랜드와 더불어 오픈런 대열에 오른 시계 브랜드가 롤렉스입니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 매장에 들어가면 그저 전시된 것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는 방법밖에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대란입니다. 그런 롤렉스가 롤렉스보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브랜드로 1926년 상표 등록을 마치고 1932년 첫 선을 보인 시계가 튜더입니다. 1942년 브랜드 설립을 정식으로 했지만 오랜 기간 롤렉스 부품을 그대로 가져와 사용했고 롤렉스 시계와 흡사한 시계들을 내놓기도 했죠. 그러나 이제는 자사 무브먼트를 생산하고 브랜드 가치를 드높이는 여러가지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특히 블랙 베이 컬렉션은 롤렉스 서브마리너와 흡사한 디자인으로 1950년대부터 소개된 튜더 오이스터 프린스 서브마리너를 재현한 시계입니다.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 온리워치 등 여러 시상식과 경매에서 수상하고 높은 낙찰가를 기록하면서 시계 애호가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스위스 정밀시계계측기관인 COSC 인증을 받은 기계식 자동 무브먼트를 탑재하고 있고 가독성이 높은 다이얼, 요긴한 베젤, 교체 가능한 가죽 스트랩 등 오래 착용해도 질리지 않은 스포츠 시계의 면모를 그대로 갖추고 있습니다. 가격은 460만원.
5. 브라이틀링 '슈퍼오션 오토매틱 42'
'전문가를 위한 도구'로서의 항공 시계들을 주로 많이 선보여왔던 브라이틀링은 IWC 수장을 맡았던 조지 컨 대표가 취임한 이후 육해공을 아우르고 여성까지 포섭하는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자사 무브먼트 외에 ETA, 셀리타, 튜더 등에서 제작한 범용 무브먼트도 골고루 탑재해 가격대 또한 선택의 폭이 넓죠. 내비타이머, 크로노맷 등이 주요 컬렉션이지만 가격대비 성능으로 꼽자면 슈퍼오션 시계에 눈을 돌릴 만합니다. 기계식 자동 무브먼트를 탑재하고 있고 수영부터 다이빙, 서핑까지 다양한 활동에도 견디는 500m 방수가 가능해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훌륭한 시계가 될 겁니다. 러버 밴드로 되어 있고 금속 밴드로 교체할 수도 있습니다. 신제품은 온라인 사이트 독점 판매로 가격은 475만원.
6. 태그호이어 '오타비아 COSC GMT'
아날로그 시계에 입문하기 좋은 스포츠 시계의 대명사, 태그호이어. 최근에는 커넥티드라는 이름의 스마트 워치도 3세대 버전까지 선보이는 등 활발한 모습입니다. 까레라, 링크, 모나코 등의 대표적인 컬렉션으로 유명하지만 태그호이어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또 하나의 시계는 오타비아입니다. 자동차(automotive)와 항공(aviation)을 뜻하는 단어를 합성한 오타비아는 1933년 태그호이어가 제작한 계기판용 시계에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됩니다. 1960년대 가독성 높은 크로노그래프 시계에 이어 2016년 대중투표를 통해 부활한 복각모델로 오타비아가 본격적으로 재등장했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나오고 있죠. 신제품으로 나온 이 시계는 42㎜ 스틸 케이스, 블루와 블랙 세라믹 양방향 베젤, 별도의 주황색 시침으로 다른 시간대를 동시에 알 수 있게 해주는 게 특징입니다. 가격은 GMT라는 기계식 기능이 하나 더 추가된만큼 553만원. 한정 수량으로만 생산됩니다.
정희경<노블레스>, <마담휘가로> 등의 잡지에서 기자, 부편집장을 지냈고 타임포럼 대표를 거쳐 현재 매뉴얼세븐 대표를 맡고 있다. 까르띠에, 바쉐론 콘스탄틴 등 여러 시계업체의 직원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스위스에서 2015년부터 고급시계재단(Fondation de la Haute Horlogerie) 아카데미 앰버서더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6년부터 시계업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스위스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PHG: the Grand Prix d’Horlogerie de Geneve)에서 심사위원을 맡았다. 한경 CFO Insight에 연재하는 문제들은 곧 출간할 <시계지식탐구>에서 발췌했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