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빗의 발견 시점은 큐빗의 의미나 정의, 그 활용 가치 등을 인지한 시점 중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게 판단하겠지만,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 1922년 2월에 진행된 실험이 큐빗의 존재를 인간이 최초로 인지한 사건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흔히 슈테른-게를라흐 실험이라고 일컬어지는 연구를 통해 독일의 두 물리학자 오토 슈테른과 발터 게를라흐는 ‘양자자석’의 특성을 처음으로 관측했다.
이들은 은(銀)원자가 우리에게 익숙한 막대자석을 단순히 아주 작게 줄여놓은 것이라면, 이 자석은 3차원 공간상에서 무작위적인 방향을 가리킬 것으로 생각했고, 이런 무작위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실험을 설계했다. 그런데 실제론 은원자로 이뤄진 자석은 그 방향을 확인하기 위해 가해준 자기장의 방향에 평행하거나, 180도 반대 방향의 딱 두 가지 상태로 ‘양자화’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오늘날 양자컴퓨터에 이와 같은 ‘은원자 자석’을 사용하는 일은 좀처럼 없지만, 은원자의 이 두 가지 상태가 큐빗의 0과 1에 해당한다.
과학사적으로 기념비적인 업적이 대부분 그렇듯이 슈테른-게를라흐 실험의 성공에도 탁월한 실험 설계, 반복된 실패에도 굴하지 않는 결의 등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공의 요건 외에도 약간 어쩌면 그 이상의 운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두 사람이 실험에 착수한 지 얼마 안 돼 독일은 역사상 유례가 드문 초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연구비 확보에 큰 어려움이 발생하게 된다. 다행히도 1차 대전 이후 인도주의적 지원의 일환으로 록펠러재단을 비롯한 미국 자본이 독일의 과학기술 연구에 투자하는 분위기가 일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골드만삭스 창업자인 마커스 골드만의 아들 헨리 골드만이 슈테른-게를라흐 실험에 연구비를 지원했다. 이 실험이 골드만 집안이 뿌리를 둔 프랑크푸르트에서 수행됐다는 것 외에 헨리 골드만이 이 실험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것 같지는 않았으니 이도 운이 좋았다면 좋았던 셈이다.
물론 골드만이 프랑크푸르트 출신이 아니었다거나, 슈테른이 싸구려 시가를 피우지 않았다고 해서 큐빗의 발견이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0세기 초 양자역학 연구는 물리학계에서 피해갈 수 없는 흐름이었기에 두 사람이 은원자를 검출할 다른 방법을 찾아내거나, 다른 누군가가 또 다른 방법으로 양자자석의 신비를 밝혀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1922년 2월, 그 모든 노력과 우연이 겹쳤기에 우리는 슈테른과 게를라흐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그 사실로부터 운이나 우연이 끼지 않은 순수한 실력만의 성공이란 게 가능할까 생각해보노라면 자신의 성공을 대할 때는 겸손해지고, 자신의 실패를 대할 때는 이를 극복할 용기가 생기는 듯하다. 마침 오늘(2월 17일)이 오토 슈테른의 출생일이기도 하니 우연에 대해 생각해 보기 딱 좋은 날이다.
최형순 KAIST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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