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앞에서 맹세하는 삼형제…정치 선전화의 걸작이 되다

입력 2022-02-17 16:34   수정 2023-04-29 18:38

“대중을 이해하려면 숨은 동기를 파악하고, 그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 민심은 국민의 생각을 표현하며, 국민의 생각은 그들이 신뢰하는 지도자와 여론 조작에 능숙한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다.” ‘홍보 선전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저서 《프로파간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론은 만들어내는 것이다”라는 버네이스의 이론을 미술로 구현한 화가가 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 미술계의 제왕이자 절대권력자로 군림했던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다. 다비드는 미술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정치 선전화를 그린 화가 중 한 명이었다.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의뢰를 받아 1784년 완성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는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선동적인 효과를 극대화한 걸작이다.

정치적 이상을 위한 개인적 희생이라는 주제의식, 등장인물들의 극적인 성격 묘사, 엄격하고 균형 잡힌 구도의 신고전주의 예술 양식이 결합된 이 작품은 1785년 9월 파리 살롱전을 방문한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큰 인기를 누렸다. 다비드가 프랑스 신고전주의 대표 예술가로 자리매김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신고전주의는 18세기 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발전한 미술 사조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로부터 영감을 받은 예술 양식을 가리킨다. 고대 로마 군복과 갑옷으로 무장한 세 명의 젊은 전사가 늙은 남자에게 경례하는 장면을 그린 이 작품이 정치 이데올로기 선전화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품을 감상하면서 궁금증을 풀어보자. 다비드는 고대 로마의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 건국사》에 나오는 일화에서 주제를 가져왔다. 로마인의 도덕과 힘을 찬양한 이 역사서에 실린 전설에 따르면 기원전 7세기에 로마와 인접한 알바는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전쟁에 지친 두 도시국가는 전면전을 지속하기보다 대표급 전사를 뽑아 결투 방식으로 승패를 결정짓기로 상호 합의한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전사로 로마인들은 호라티우스 가문의 삼형제를, 알바인들은 쿠리아티우스 가문의 삼형제를 선택했다.

다비드는 웅장한 로마식 고전 건축을 배경으로 호라티우스 삼형제가 아버지께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하는 순간을 묘사했다. 세 아들은 근육질 팔을 앞으로 펴서 손가락을 뻗는 로마식 경례를 한다. 아버지는 왼손으로 삼형제에게 건네줄 세 개의 검을 높이 들고 오른손은 위로 들어올리며 용기를 불어넣는 동작을 한다. 아버지의 단호한 태도와 동작에서 세 아들을 피의 제단에 바치는 영웅적 행동에 따른 어떤 망설임도 없다는 각오가 느껴진다. 오른쪽의 슬픔에 잠긴 여성들과 아이들은 삼형제의 아내와 누이, 어린 자식들이다. 호라티우스 가문과 쿠리아티우스 가문은 형제자매끼리 결혼하고 약혼한 사이였지만 결투로 인해 서로 적이 돼 싸우는 비극적 운명을 맞은 것이다. 삼형제는 여성들의 눈물과 애원에도 불구하고 공화국을 구하라는 아버지의 부름에 순종한다.

다비드가 직선을 강조한 남성의 강인한 육체와 곡선을 강조한 여성의 부드러운 육체, 남성의 결연한 자세와 여성의 무기력한 자세를 대비한 의도가 있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가장 근본이 되는 국민의 미덕이자 의무로서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것, 현실의 삶보다 더 소중하며 심지어 혈육보다 더 우선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다음은 다비드가 애국심을 강조한 선전화를 그리게 된 배경을 살펴보자. 다비드는 위대한 예술가이자 급진적 정치 성향을 가진 혁명가였다. 그는 프랑스 혁명을 상징하는 인물인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 장 폴 마라와 우정을 나누는 정치적 동지였다. 프랑스 혁명을 열렬히 지지했던 다비드는 혁명 이후에 세워진 정부에서 정권 선전을 담당하며 혁명정신을 전파하는 선전화들을 선보이는 등 시민을 선동하는 역할을 했다.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프랑스 혁명 직전의 격동기였다. 공화주의자들이 시민혁명 운동에 열정적으로 헌신하며 절대왕정 제도를 무너뜨리려고 시도한 시점이다. 루이 16세는 백성들로부터 충성심을 얻고 도덕적인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이 작품을 주문했다. 하지만 다비드는 고대 신화와 역사를 동시대 정치와 비유해 묘사하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한 자신의 특기를 발휘해 태동하는 혁명정신을 그림에 담았다.

다비드는 미술이 정치적 도구와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 정치 선전화의 선구자였다. 영웅주의와 애국심, 시대정신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구현한 이 그림은 정치 선전화도 걸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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