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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돌아볼 때, 경쟁만큼 인류를 발전시킨 것이 있을까요. 뉴욕에 도착했을 때 가장 인상 깊은 것 중 하나는 스카이라인입니다. 엄청난 높이의 초고층 빌딩이 끝없이 늘어선 모습은 두바이, 홍콩 등 스카이라인이 유명한 어떤 도시와 비교해도 압도적입니다.
이런 스카이라인이 가능했던 것도 경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871년 시카고가 파괴되면서 재건 작업이 시작됐고, 이것이 초고층 빌딩 건설에 대한 시작이 됐습니다. 미국은 대호황이었고 당대에 부를 축적한 사람이라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짓겠다는 포부를 한 번쯤 품었습니다.
전직 뉴욕주 상원의원이기도 했던 부동산개발업자인 윌리엄 레이놀즈도 그랬습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짓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건물을 계획했습니다. 1928년 2월부터 건물에 대한 계획이 시작됐습니다. 애초 40층짜리 건물로 계획됐지만 곧 54층으로 높아졌고, 결국 뉴욕 미드타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짓는 것으로 변경됐습니다. 이후 67층으로 다시 변경되는 등 계획은 끊임없이 변했습니다.
레이놀즈는 1928년 4월 토지에 대한 67년 임대계약을 체결했고, 고층 건물에 대한 계획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건축가인 윌리엄 반 알렌과 손을 잡고 디자인에 들어갔습니다. 같은 해 6월 디자인도 완성됐고, 3개월 안에 착공하는 것을 목표로 착착 진행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건설이 시작되면서 장애물이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레이놀즈는 반 알렌의 디자인이 생각보다 기술적으로 어렵고 돈이 많이 든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는 빌딩 꼭대기에 창문처럼 보이도록 벽돌을 사용하고, 19세기 이탈리아 스타일의 돔을 사용하는 등 실용적으로 디자인을 바꿨습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9월 기공식까지는 버텼지만 레이놀즈는 결국 10월 크라이슬러의 설립자인 월터 크라이슬러에게 토지, 디자인, 건축 서비스, 임대 권리 등을 모두 200만 달러에 판매했습니다.
자동차 사업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크라이슬러는 이름을 남기는 동시에 자녀들에게 건물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맨해튼의 초고층 빌딩이었습니다. 그는 이곳에 건물을 지어 크라이슬러 본사로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크라이슬러의 첫 번째 디자인은 레이놀즈의 계획과 매우 비슷하게 유지했습니다. 다만 68층이 추가됐고, 5층 아래에 석조 정면이 생기고, 건물 최고층 3개 층에 전망대가 추가됐습니다. 기초 공사가 11월부터 두 달간 계속됐고 3600만 파운드의 흙과 1억 파운드 이상의 암석이 제거됐다고 당시 언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29년 3월부터 강철빔이 설치되며 건물은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그해 10월 울워스 빌딩 높이를 넘어서면서 공식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됐습니다.
1930년 1월, 크라이슬러는 새 빌딩에 사무실을 열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본격적인 임대차 계약은 3개월 후부터 시작됐습니다. 그 건물은 1930년 5월 27일에 공식 개장했는데 가용 공간의 65%가 6월 전에 임대를 마쳤다고 합니다. 건설사는 8월 건설이 완공됐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뉴욕시의 건설관리 부처에서는 1932년 2월까지 공식적으로 완공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크라이슬러 빌딩의 높이는 1046피트(318m)에 달합니다. 그중 125피트(38m)가 첨탑 높이인데요. 여기에 또 재미있는 일화가 숨어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당시 뉴욕은 하늘을 향한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크라이슬러 빌딩과 비슷한 시기에 트럼프 빌딩으로 불리는 40 월스트리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함께 건설 중이었습니다.
크라이슬러는 마지막까지 높이를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빌딩이 높이를 확정하자, 마지막에 첨탑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이 역시 매우 비밀스럽게 진행됐는데요.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이 첨탑은 4개로 나뉘어 현장으로 들어왔고, 90분 만에 설치가 완료됐다고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1929년 10월 23일 첨탑이 올라갔는데요. 당시에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다음 주 바로 블랙먼데이와 함께 대공황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어렵게 만들어낸 세계 최고의 건물이라는 명성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1931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1250피트)이 개장하면서 자리를 뺏긴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높은 벽돌 건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크라이슬러 빌딩도 엠파이어빌딩과 마찬가지로 미국 원주민의 힘을 빌렸습니다. 고소공포증이 없던 이들은 임금도 저렴해 고층빌딩 건설에 큰 보탬이 됐습니다. 크라이슬러 빌딩은 주당 평균 4층씩 건물이 올라갔는데, 작업자 중 한 명도 사망하지 않고 안전하게 지어졌다고 합니다.
크라이슬러 회사의 본사로 쓰이긴 했지만 회사가 소유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모서리 장식이나 지붕 장식 등은 자동차 후드 장식 등 크라이슬러 자동차 제품을 모델로 한 것이 많습니다. 특히 이 건물은 계단식 크라운으로 유명한데요. 7개의 방사형 계단식 아치로 구성된 디자인 매우 독특합니다. 녹슬지 않는 강철을 이용해 지금도 햇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크라이슬러가 개인 자산을 투자해서 지은 만큼 1940년 그가 죽고 나서는 가족이 물려받았습니다. 끝까지 가문의 재산으로 이어가진 못했습니다. 크라이슬러 가족은 1953년 윌리엄 제켄도르프에게 1800만달러에 매각했습니다. 이후 크라이슬러도 본사 사무실을 옮겼습니다.
이후 많은 손 바뀜이 있었습니다. 가장 최근 거래는 2019년 3월이었습니다. 뉴욕에 기반을 둔 부동산 회사인 RFR홀딩은 1억5000만 달러(약 1793억원)에 크라이슬러 빌딩을 사들였습니다. 2008년 지분의 90%가 8억 달러에 팔렸던 것을 고려하면 10년 사이 80% 넘게 급락한 셈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헐값 매각에 당시 언론들도 '충격'이라며 소식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싼값에 팔린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먼저 토지 임대료 부담이 컸습니다. 뉴욕은 토지 임대료를 따로 내야 합니다. 건물을 지을 때 땅을 살지, 토지 임대료를 내고 건물에 대한 소유권만 가질지 결정하는데 크라이슬러 빌딩은 건물에 대한 소유권만 있는 상황입니다. 토지소유권은 쿠퍼 유니언 스쿨이 가지고 있습니다. 2017년 연간 775만달러였던 크라이슬러 빌딩 부지 임대료는 2018년 3250만달러로 껑충 뛰었습니다. 2028년까지 최대 4100만 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합니다. 임대료가 이것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빌딩 가치가 떨어진 겁니다.
90년이 넘은 건물이다 보니 시설도 낙후됐습니다. 크라이슬러 빌딩은 순수 오피스 빌딩인데요. 미드타운 등에 신규 오피스 건물이 많이 생기면서 경쟁력이 떨어졌습니다. 크라이슬러 빌딩은 리모델링도 되지 않아서 시설이 열악했고, 불평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역사적 가치와 맨해튼 미드타운에 있다는 입지적인 강점에도 불구하고 헐값에 팔린 겁니다.
새로운 주인이 크라이슬러 빌딩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언론에서는 '전망대를 다시 만들겠다', '호텔로 만들겠다' 등의 계획이 거론된다며 여전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고층빌딩으로 평가받는 크라이슬러 빌딩. '몰락'에서 벗어나 다시 재기할 수 있을지 뉴요커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뉴욕=강영연 특파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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