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수강생을 모집하는 한 메타버스 단체의 온라인 문구다. 전문가를 양성해 자격증까지 주겠다는 이 강좌의 속을 찬찬히 뜯어보면 금세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온라인에 올라와 있는 실습 결과물부터가 초보자 수준이기 때문이다. 사용된 프로그램도 네이버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가 무료 공개한 ‘빌드잇’이다. 제페토 관계자는 “누구나 가상 공간을 쉽게 만들 수 있도록 개발된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지형?오브젝트 유형 등 기본 조작법만 익히면 강의를 따로 듣지 않아도 프로그램 이용에 무리가 없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메타버스, NFT(대체불가능토큰) 등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정보기술(IT) 관련 민간자격증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상당수가 실용성 없는 ‘무늬만 자격증’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실제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 수준과도 동떨어져 있다는 평가가 많다.
한 메타버스 전문가는 “자격증 한 개가 아쉬운 취준생들의 궁박함을 활용한 상술이 IT 열풍을 타고 슬그머니 확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수업과 자격증의 질이다. 메타버스 기초 개념과 플랫폼 이용법을 길어야 4주 정도만 ‘속성’으로 가르치고도 강사 자격증을 내준다. 서울에 있는 A아카데미의 경우 지난달 ‘메타버스 전문강사’ 자격증 9기 2주 과정을 모집했다. 화상 수업에서는 제페토, 게더타운 등 플랫폼 조작법과 NFT 개념을 강의한다. 완강하면 메타버스 부문 강사 인증서가 발급된다. 별도 시험을 통과하면 ‘메타버스콘텐츠전문가’ 자격증도 준다. 플랫폼에서 가상 공간을 제작해 발표하고 간단한 필기시험을 치르는 게 전부다. 한 수강생은 “수업 내용을 확인하는 수준에 그쳐 사실상 수강생 전원이 자격증을 받는다”고 털어놨다.
‘초고속 자격증 양산’에 집중하다 보니 수업 내용은 수준 이하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정수 명지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현재 서비스 중인 메타버스 플랫폼 사용법은 개인이 충분히 독학 가능한 난도”라고 했다. 김상균 강원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높은 수강료에 비해 교육 내용은 기초적인 맵이나 캐릭터 만들기 등으로 미흡하다”며 “자격증 취득은 수강생 입장에서 해당 산업을 조금이나마 공부했다는 만족감을 충족하는 데 그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메타버스 산업의 급팽창으로 인력 확보가 급한 기업의 시각도 다르지 않다.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를 운영하는 SK텔레콤 관계자는 “최근 기업들은 어학 점수나 자격증 등 정량 요인보다 지원자의 직무 적합성을 훨씬 중요하게 본다”며 “민간자격증을 여러 개 취득해도 실무 능력을 현장에서 입증하지 못하면 취업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
‘부실’ 시비가 잦은 분야는 메타버스 같은 최근 인기가 높은 IT분야다. B메타버스 단체가 개설한 메타버스 자격증 강좌의 경우 메타버스 스타강사 강연, 프레젠테이션 만들기 등 실무와 무관한 수업을 끼워 넣어 시간수를 맞췄다. 반면 난도가 높은 블록체인 이론 수업은 하루에 불과하다.
최근 2~3년 새 우후죽순 생겨난 수십 종의 인공지능, NFT 관련 자격증도 상황이 비슷하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새롭게 주목받는 기술이 유행처럼 번질 때마다 지금처럼 그 기술의 이름만 가져온 무의미한 민간자격증이 생기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허술한 민간자격증 관리 제도부터 문제라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는 담당 부처별로 민간자격증 등록 절차에만 관여할 뿐 자격증의 직무 내용이나 합격 조건 등 질적인 부분은 별도 심사하지 않는다. 최경진 교수는 “대부분의 민간자격증 직무 내용에 자격증 시험을 담당하는 기관이나 자격증의 전문성에 대한 정보가 없다”며 “자격증을 홍보하는 문구나 자격증을 쓸 수 있는 산업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만 기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법인이 어떤 절차로 자격증 취득 과정을 운영하는지, 취득한 자격증을 유관 산업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등 정부의 관리?감독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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