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물체도 위성에 포착…기술 발전이 연 '투명한 전쟁' 시대

입력 2022-02-20 18:14   수정 2022-03-06 00:31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미국 콜로라도에 있는 상업용 인공위성기업 맥사테크놀로지는 지난 14일 벨라루스 남동부 레치사 훈련장에 주둔하던 러시아 군인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열흘 전 같은 장소를 촬영한 위성 사진과 비교하니 눈밭 위에 도열했던 군용차량이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짧은 동영상 앱 틱톡엔 러시아 군부대가 남동부로 옮겨가고 있다는 게시물이 잇달아 올라왔다. 벨라루스에 있던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와 더 가까운 남쪽으로 진군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러시아 군부대의 기밀정보를 세상에 공개한 것은 각국 국방부가 아니라 민간인들이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갈등이 이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전쟁의 시대’를 열고 있다는 평가다.

‘투명한 전쟁의 시대가 왔다.’ 이코노미스트는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인류 역사상 전쟁은 줄곧 불투명한 것투성이였다. 아군의 ‘진짜 정보’가 적에게 많이 노출될수록 공격받을 위험은 높아진다. 첩보력과 정보력이 전쟁 승패를 좌우했던 배경이다.

이런 군사 기밀들이 오픈소스 정보인 오신트 플랫폼에 수시로 공개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군 이동 여부가 실시간 ‘커밍아웃’되는 파티가 펼쳐지고 있다고 했다. 군인 외엔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던 정보다. 기술 발전이 변화를 이끌었다. 맥사는 매일 300만㎢ 넘는 장소를 촬영하는 4개의 위성을 보유했다. 위성으로 지상에 있는 30㎝ 크기 물체까지 식별할 수 있다.

위성사진만으로 파악하기 힘든 정보 공백은 인터넷에 떠다니는 각종 영상이 메웠다. 러시아와 벨라루스 주민들은 14일 군부대 이동 모습을 담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틱톡 등에 여러 건 공유했다. 상당수는 벨라루스 남부 도시인 마지르에서 이보다 더 남쪽에 있는 나라울리아로 향하는 도로에 집중됐다. 영상 속 장갑차엔 같은 부대 마크가 붙어 있었다. 민간 전문가들은 다수 군인이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으로 옮겼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같은 날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인근 훈련병력을 철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벤 웰리스 영국 국방장관은 러시아가 군인들을 전방지역으로 배치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민간인들이 영국 국방부가 맞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미국 위성데이터 기업인 플래닛도 ‘투명한 전쟁’의 시대를 이끌고 있다. 플래닛은 러시아 옐냐에 있는 군부대 위성 사진을 공개했다. 지난달 이 부대에 설치된 군용 막사는 지난해 11월보다 크게 늘었다. 이달 들어 옐냐 상공을 뒤덮은 구름 때문에 항공사진 추적은 끊겼다. 이 자리는 유럽우주국(ESA)에서 공개한 지상관측 레이더가 대신했다. ESA는 6일마다 대륙별 레이더 사진을 촬영해 공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달 들어 옐냐 부대에 레이더 파장을 반사하는 물체가 현저히 줄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집결했던 군인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는 의미다.

올리 밸린저 런던칼리지 연구원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있는 포고노보에 방공 시스템을 구축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군용 레이더가 내보내는 간섭 신호를 추적하는 공개 플랫폼을 활용한 것이다.

민간 군사정보가 늘고 있지만 정확성 면에선 여전히 떨어진다. 정보가 범람해 ‘진짜 정보’를 추려내기 어려운 데다 고해상도 데이터도 아직 부족하다. 각국 군부대가 이런 정보를 역이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군인들이 실제 이동하는 방향과 반대 방향의 틱톡 영상을 대거 올리는 식으로 반대 정보를 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전쟁 흐름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각국 정부 발표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시대가 끝나고 있어서다. 만약 유럽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과거 어느 때보다 투명한 전쟁이 될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내다봤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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