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마리는 공백의 세계를 넘나들며 고유함을 표현한다. 어느 한쪽으로 정의할 수 없는, 자신만의 균형을 찾아서.
[박찬 기자] 홀린 듯 바라보게 만드는 모델 마리의 성정. 그 낯선 포트레이트 컷 앞에서 감정은 흔적이 되어 유유히 묻어난다. 옷과 얼굴, 표정과 몸 선까지, 그 관통하는 요소가 어디에 있든 마리의 획은 언제나 중심점을 향한다.
“누군가에게 호기심과 관심을 이끌 수 있는 것, 모델로서 이런 능력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내 얼굴의 이미지 때문에 더 많은 분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서 감사하죠” 모델로서 발돋움해 나간 지 어느새 4년 차라는 그는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으로 남을 것인지에 대해 깊숙이 고민해온 듯 보였다.
“불안감 들 때요? 당연히 있죠. 그때마다 ‘난 다르다’, ‘난 특별하다’라고 되뇌곤 해요.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선 그저 나 스스로를 믿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곁에 두는 것만으로 마음이 꽉 찬다는 모델 마리의 꿈. 그 산뜻한 결심이 지금의 자신, 지금의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Q. 촬영 콘셉트가 ‘Lotus Flower’였다. 더러운 진흙탕 속에 뿌리를 두면서도 결국 유려한 향기를 내비치는 연꽃. 낯선 환경 앞에 무너지지 않고 내 모습, 내 얼굴을 유유히 지켜나가는 마리를 생각한 뒤 기획했다. 촬영은 어땠나
“무척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촬영 내내 꽃과 함께였기에 더 다채로웠던 것 같다. 입었던 착장들이 무드와 잘 어울려서 더욱 감사했고(웃음)”
Q. 평소 촬영장에서도 꽃을 많이 활용하는 편인지
“그렇다. 아무래도 내 이미지가 봄의 계절감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Q. 처음 화보 촬영장에 나섰을 때를 기억하나
“4년 전, 사실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다(웃음). 2018년 ‘데이즈드 코리아(DAZED KOREA)’ 화보 촬영을 통해 모델로서 국내에 처음 데뷔했다”
Q. 적지 않은 나이에 데뷔한 셈인데 출발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나
“출발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한 만큼 불안감은 거의 없었다. 모델 일을 정말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키가 매번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Q. 대학교에서는 어떤 공부를 했는지 궁금하다
“처음엔 영문학과에서 공부하다가 모델 일을 위해 의상디자인과로 편입했다”
Q.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먼저 모델 생활을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학교생활을 하던 도중 일본 쪽에서 먼저 (모델 일) 제의가 왔다. 그렇게 일본에서 1년 정도 지냈는데, 하루하루 정말 뜻깊고 행복했다. 일에 대한 만족감보다도, 다른 문화권의 생활을 자연스레 접했다는 점에 더 즐거웠다”
Q. 다른 나라의 모델을 굳이 섭외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일본에서 한국 여성의 이미지는 도회적인 느낌이 강한데, 내가 거기에 어느 정도 걸맞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현지에는 귀엽고 상큼한 느낌의 모델이 많다 보니 내게 그런 부분이 돋보였던 것 아닐까 싶다”
Q. 한국과 일본, 화보 촬영에서의 차이점이 있다면
“느낌이 사뭇 다르다. 일본이 내추럴하고 느슨한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한국에서의 화보 촬영은 다소 완벽주의적인 경향이 있다. 그만큼 (촬영에) 투자하는 시간 또한 각각 조금씩 다르고(웃음)”
Q. 일본에서의 1년, 그 이후에 국내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 촬영 소감은 어땠는지
“앞서 말했던 ‘데이즈드 코리아’ 촬영장에 처음 나갔는데, 그 당시만 하더라도 내가 무슨 촬영에 임하고 있는지 잘 인지하지 못했다. 이후 발행본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매거진 화보 촬영을 한 거구나’ 깨달았다(웃음)”
Q. 국내보다 해외에서 모델 일을 먼저 시작하지 않았나. 국내 촬영에 임하며 어려운 부분은 없었나
“의사소통이 편해진 만큼 특별히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오히려 촬영 콘셉트가 훨씬 다양해 구성원으로서 즐길 요소가 많다“
Q. 첫 화보컷을 본 뒤 ‘나도 이제 이런 걸 할 수 있구나’라는 성취감을 느꼈다고. 최근의 작업물을 접할 때는 어떤 감정을 느끼나
“물론 좋은 결과를 얻고 나면 만족감이 생기지만, 보통은 ‘이 부분이 아쉽다’, ‘이 포즈에는 이렇게 해야 했는데’라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곤 한다”
Q. ‘마리’라는 활동명의 의미
“사실 ‘마리’는 내 세례명이다. 본명의 성이 ‘소’인데 ‘소마리’를 하기에는 좀 웃기지 않나(웃음). 그래서 편하게 ‘마리’로 줄이게 됐다”
Q. 여전히 모델로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상대적으로 체력이 빈약한 편이다(웃음). 촬영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집중력이 점점 떨어져 가는 것을 느낀다”
Q. 오늘 촬영도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었나
“아니다. 딱 적당했다(웃음). 5시간 정도 지나다 보면 그때부터는 오로지 정신력으로 버티게 되는 것 같다”
Q. 그와 반대로 모델로서의 강점을 꼽자면
“나와 이미지가 겹치는 모델이 없다는 것. 사실 엇비슷한 느낌의 모델들이 많지 않나. 그런 와중에 난 차별화된 얼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Q. 본인의 이미지가 어떤 모습이라고 느끼나
“그건 솔직히 잘 모르겠다(웃음). 많은 분들이 ‘분위기 있다’라고 표현해주시지만 그 분위기란 대체 무엇일까 궁금할 때가 있다. 오랫동안 고민해봤는데, 신비롭고 몽환적인 이미지가 담겨있다는 뜻 아닐까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호기심과 관심을 이끌 수 있는 것, 모델로서 이런 게 중요하지 않나. 이미지 때문인지 몰라도 보다 많은 분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 감사하다”
Q. 차별화된 분위기가 있다는 것, 언제부터 느껴왔는지
“어렸을 때부터 그 말을 줄곧 들어오긴 했지만 이해하진 못했다. 그렇게 모델로 데뷔한 이후 촬영본을 접하고 나니 무언가 독특하게 생기긴 했더라(웃음). 특히 광고 촬영 현장에서 유독 그렇다”
Q. 이국적인 분위기와는 다르게 대전 출신이라는 말을 들었다
“꽤 오랫동안 살았다. 24살에 서울로 올라오기 전까지는 대전에서 지냈다(웃음)”
Q. 모델로서 상대적으로 작은 키, 좌절했던 적도 많은지 궁금한데
“모델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런 걱정이 컸지만, 사실 생각보다 많진 않았다. 오히려 요즘 와서야 더 (작은 키에) 좌절하고 있다(웃음). 해외 컬렉션 런웨이에 나서고 싶은데 걸림돌이 되는 것 같아 여전히 아쉬움은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벌써 포기하고 싶진 않다. 키가 작다고 해서 그곳에 아예 오르지 못하는 건 아니지 않나. 샤넬(Chanel)의 최연소 뮤즈였던 데본 아오키(Devon Aoki), 톱 모델이었던 케이트 모스(Kate Moss)도 키가 작은 편이었다. 나 역시 기회가 된다면 그 세계에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Q. 신체적으로 돋보일 만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눈(웃음). 인상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모델로서는 더더욱 그렇고”
Q. 마리의 얼굴에는 물론 몽환미도 서려 있지만, 퇴폐적인 무드도 갖추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건 다양한 화보 콘셉트에 녹아들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좋은 말씀 감사하다(웃음). 퇴폐적인 이미지에도 관심이 많아 때때로 관련 레퍼런스를 찾곤 한다. 그 무드의 헤어 스타일이라든가 착장 스타일이나 그런 것들”
Q. 모델로서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시점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 있다가 촬영장에 나선 적이 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포토그래퍼 실장님과 기자님이 직접 촬영 제의를 해주셨더라. 근데 그 촬영이 기자님과의 마지막 화보 작업이었던 거다. 끝나고 나서 (그 기자님이) ‘앞으로도 정말 잘 되었으면 좋겠다’라며 그날 촬영한 사진들을 모두 인쇄해서 선물해주셨는데, 그때 누군가는 내 진정성과 강점을 알아주고 있다는 걸 크게 느꼈던 것 같다. 내 가능성을 굳게 다져간 기점이기도 하고”
Q. 화보 촬영에 돌입하는 방식이 있다면
“가장 먼저 촬영 시안을 검토한 뒤, 나답게 포즈를 풀어내는 편이다. ‘시안’이라는 옷을 내게 입힌다는 느낌으로. 내 모습 그대로 결과물을 완성할 때 가장 성취감을 느낀다”
Q. 지금은 마리의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지점일까
“3분의 1 정도. 이제 4년 차인데 얼마 안 되지 않았나(웃음). 아직 많이 멀었다”
Q. 그간 모델 활동을 하며 느낀 점
“물론 재밌는 직업이지만 그만큼 살아남기 힘들다는 걸 느끼곤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촬영장에) 안 보이는 모델들이 많은데, 그런 걸 볼 때면 나 또한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경쟁에 밀리면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게 되는 거니까”
Q. 불안감을 용기로 바꾸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면
“그런 불안감이 들 때마다 ‘난 다르다’, ‘난 특별하다’라고 되뇌곤 한다. 목표를 위해선 그저 나 스스로를 믿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내가 설령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조금씩 노력하다 보면 새로운 기점에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Q. 처음부터 그런 올곧은 가치관을 갖고 있었나
“전혀 아니다(웃음). 사실 내가 모델 일을 이토록 길게 지속하게 될지는 몰랐다. 처음엔 그만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하나 고민했던 적도 있고. 근데 신기한 건 그때마다 극적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는 거다. 이처럼 내 가능성을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힘든 와중에도 큰 힘을 얻곤 한다”
Q. 엠씨더맥스 ‘넘쳐흘러’, 우즈 ‘WAITING’ 등 MV에서 인상적인 얼굴을 보여준 바 있다. ‘배우 생활도 잘 어울리겠다’라는 말을 들을 땐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론 정말 감사하지만 아직 큰 뜻은 없다. 추후 그런 기회가 오더라도 연기자 활동을 위해 모델 일을 포기하고 싶진 않다”
Q. 남자보다는 여자 팬이 더 많을 것 같은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 같다(웃음). 동성이 칭찬해주는 건 그만큼 멋지다는 의미니까,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있다”
Q. 일상 가운데 얻는 소소한 행복은
“한여름에 샤워를 하고 에어컨을 틀은 뒤 닌텐도 ‘동물의 숲’을 하는 거다(웃음). 외국 드라마를 보면서 친구랑 전화하는 것도 좋아한다”
Q. 최근 인상 깊게 본 작품이 있다면
“‘튜더스(The Tudors)’나 ‘베르사유(Versailles)’ 같은 시대극을 좋아한다. 그 옛날의 복식, 인테리어를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Q. 사람들이 모르는 나의 강점
“내 몸에서 얼굴은 정말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많은 분들이 오로지 그것만 봐주시는 것 같아서 아쉬울 때가 있다. 모델로서의 몸도 꽤 괜찮은 편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기회가 된다면 이런 강점을 꼭 한번 알아봐 주셨으면 좋겠다(웃음). 사실 일상 속에서 마른 몸이 건강에 안 좋아 보인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모델 세계에 있어선 그것만의 아름다움이 나타난다고 믿는다”
Q. 모델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더 식단 조절을 하는 편인가
“아니다. 오히려 더 잘 먹게 된다. 영양분을 많이 섭취해야 촬영장에 가서도 기운을 잃지 않는다(웃음)”
Q. 도회적인 인상 때문에 받는 오해가 많을 것 같은데
“그런 것 같다. 첫인상과 다르게 나는 인간적인 모습이 많은 사람인데 말이다(웃음). 그만큼 따스한 면도 많고”
Q. 스스로를 볼 때 본인은 패션 모델&뷰티 모델 중 어느 쪽에 가깝다고 생각하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뷰티 쪽에 훨씬 가까웠지만, 이젠 서서히 그 중간점에 들어서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걸 원하지 않는다. 딱 중간의 기점에서 걸어 나가고 싶은 마음이다”
Q. 올해를 어떻게 보낼 예정인가
“2022년은 평안하게 지내는 것이 목표다. 작년에는 라이프스타일에 있어서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올해는 꼭 안정된 생활을 이뤄내고 싶다. 내게 잘 맞는 취미도 새롭게 발견해보고 싶고”
Q. 모델 생활에 있어서 놓친 것, 이룬 것, 바라는 것
“아직 놓친 건 없다. 단기적인 목표를 정할 때마다 항상 그 지점에 다다랐던 것 같다”
“이뤄낸 건 별로 없지만, 최근 삼성 광고 촬영이 특히 인상 깊다. 가족들에게 내 활동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어서 좋았다”
“모델로서 바라는 건 그저 오랫동안 행복하게 이 일을 지속해나가는 것. 마음 같아선 70살이 훌쩍 넘어서까지 그대로 남아 있고 싶다. 또 하나의 목표가 있다면 톱모델이 되는 것이다. 어느 요소 하나만큼은 독보적으로 돋보이는, 그런 톱모델 말이다”
에디터: 박찬
포토그래퍼: 두윤종
의상: EENK, 논메인스트리머, Alexander Wang, MSGM, 발망(Balmain), COS
슈즈: 렉켄
주얼리: 오드콜렛
플로리스트: 더뉴즈(장유진)
헤어: 정샘물인스피레이션 웨스트점 은비 디자이너
메이크업: 정샘물인스피레이션 웨스트점 소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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