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배우, 디자이너, 쇼핑호스트….
가상인간(virtual human)의 활동 영역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광고 출연, 음원 발매 등 엔터테인먼트 영역을 넘어 쇼호스트나 디자이너 등 전문 분야까지 종횡무진이다. 이번엔 드라마에서 정식 배역까지 맡았다. 가상인간 역할이 아니라 진짜 사람을 연기한다.
21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인공지능(AI) 디지털 그래픽 스타트업 펄스나인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자회사 레디엔터테인먼트는 다음달 시즌제 4부작 로맨틱 코미디 웹드라마를 유튜브에서 선보인다. ‘안녕하쉐어’(가칭)란 이름이 붙은 이 드라마는 공유하우스에 사는 ‘찌질한’ 남자 대학생의 연애 성장기를 그린다. 펄스나인이 만든 가상 걸그룹 이터니티 멤버 ‘재인’이 이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한다.
드라마에서 재인은 SNS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인플루언서로 등장한다. 남자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상대이자 여자 주인공의 절친한 친구 역할이다. 가상인간이 드라마에 카메오로 출연한 적은 있지만 정식 배역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인은 드라마 안에서만큼은 ‘진짜 사람’이다. 평범하게 대화하고, 키스신도 찍는다. 펄스나인의 ‘딥리얼 AI’ 기술이 이를 가능케 했다. 배우들과 함께 촬영한 대역의 동작 데이터에, 국내 가요계 스타들의 표정, 입모습, 몸짓 등의 데이터 20년치를 AI가 학습해 감쪽같이 덧입히는 방식이다. ‘페이스 스와프’란 일종의 하이브리드 디지털 그래픽 기술이다. 펄스나인은 올해 안에 태국 국영방송과 손잡고 AI 남자 아이돌 ‘벤자민’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오리지널 드라마에 데뷔시킬 예정이다.
가상인간의 영역 확장은 가요계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지난해 광고계 블루칩으로 떠오른 가상인간 ‘로지’, YG케이플러스와 모델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은 ‘한유아’ 등이 이달 가수로 데뷔한다. 이미 패션 잡지 화보, 보험사·식품 광고 등을 통해 얼굴을 알린 이들이다. LG전자의 ‘김래아’도 지난달 가수 윤종신이 이끄는 미스틱스토리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음원 발매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엔 소비자와의 직접 소통 영역에도 발을 디디고 있다. 네이버 쇼핑라이브에 출연한 ‘리아’, 롯데홈쇼핑 쇼호스트로 나선 ‘루시’ 등이 대표적이다.
가상인간이 다양한 영역에서 빠르게 확산할 수 있는 건 배우로 데뷔한 걸그룹 재인처럼 사람의 동작과 AI 데이터를 합성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이 각광받으면서다. 컴퓨터에 100% 의존하는 기존 3차원(3D) 기반 시각특수효과(VFX)보다 경제적이고 빠르다.
업계에선 조만간 높은 지능까지 갖춘 ‘퍼펙트 가상인간’도 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LG AI연구원은 이미 ‘초거대 AI’를 접목한 AI 아티스트 ‘틸다’를 공개했다. 초거대 AI ‘KoGPT’를 보유한 카카오브레인도 고도 가상인간을 개발하고 있다.
AI업계 관계자는 “AI 은행원, AI 강사, AI 안내원 등은 특정 인물 영상 데이터를 AI에 학습시켜 재현한 아바타 형태고, 현재 인기가 높은 인플루언서 가상인간은 사람의 동작에 AI 그래픽을 덧씌우는 하이브리드 형태로 다르다”며 “AI의 진화로 두 방식의 경계가 갈수록 흐려지고 있어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을 연출해내는 완전한 가상인간이 출현할 날도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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