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공식 취임한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신임 대표는 22일 열린 첫 기자간담회에 '체질 변화'를 화두로 들고 나왔다. 이날 간담회에서만 변화를 20번가량 언급한 그는 "운용시장의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나아가 변화를 능동적으로 유도하는 게 최고경영자(CEO)로서 궁극적 목표"라고 밝혔다.
배 대표는 특히 운용업계 주요 현안으로 꼽히는 상장지수펀드(ETF) 분야에서 큰 폭의 성장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메가 트랜드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와 에너지, 데이터 관련 신사업 중심으로 새로운 테마형 상품들을 개발하겠단 것이다. 퇴직연금 시장이 성장 중인 만큼 타깃데이트펀드(TDF)의 경쟁력 향상과 시장 점유율 확대를 중점 추진하겠다고도 전했다.
아울러 외부위탁운용관리(OCIO) 사업에도 힘을 싣는다. OCIO 제도란 최고투자책임자(CIO)의 역할을 아웃소싱한다는 의미로 연기금과 국가기관, 법인 등이 자금을 외부 투자전문가에게 일임해 운용하는 체계를 일컫는다. 전략적 의사결정 권한의 상당부분이 수탁자인 운용사에 위임된다.
배 대표는 "앞으로 자산운용 시장의 가장 큰 수요는 연금시장에 있다는 게 제 결론"이라며 "연금 시장에선 TDF 같은 자산배분형 상품 수요가 지속 증가할 것이고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시행되면 OCIO의 중요성도 부각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배 대표는 이날 ETF의 리브랜딩을 검토하고 있다고도 귀띔했다. 기존 한투운용의 ETF 브랜드인 킨덱스(KINDEX)를 거두고 새로운 브랜드를 내놓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최근 한투운용은 상품 운용과 마케팅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자사 ETF 브랜드 '킨덱스'와 '네이게이터'를 킨덱스로 통합한 바 있다.
그는 "운용사가 추구하는 게 무엇이느냐에 따라 브랜드명이 결정되기 때문에 브랜드의 역할은 장기적으로 볼 때 상당히 중요하다"며 "킨덱스라는 브랜드를 계속 가져갈 것인지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다. 올 하반기쯤 브랜드 리뉴얼과 관련한 사항, 전체적인 이미지 강화를 위한 마케팅 전략을 구체화해 다시 한 번 발표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액티브 ETF에 대한 남다른 소신도 전했다. 배 대표는 "액티브 ETF가 패시브 ETF 대비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ETF를 패시브하게 운용하다보면 경직성이 뒤따를 수 밖에 없는데 이를 액티브 방식으로 전환하면 유연성이 더해진다. 이뿐이다. 액티브 운용을 통해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다면 이미 펀드에서도 그렇게 됐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액티브 ETF의 장점은 초과 수익이 아닌, 고객들의 수요에 맞는 상품을 만들 수 있게 상품 개발 영역을 확장하는 데 있다는 의견이다.
사실상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양대 운용사를 중심으로 ETF 시장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후발주자들의 약진 가능성도 강조했다.
배 대표는 "현재의 경쟁 양상을 보면 차이는 상품 개발에서 벌어지고 있다. (삼성과 미래) 두 회사는 어느정도 기반을 잡은 회사이고 나머지 회사들은 따라가야 하는 회사이지 않느냐"며 "그들과 똑같은 방법으로는 격차를 줄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다 안다고 생각해도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상위 운용사들을 쫓아갈 여지는 있다고 본다. 우리도 나름대로 복안이 있다"고 밝혔다.
배 대표는 2000년부터 21년간 삼성자산운용에 몸담으며 인덱스운용본부장과 패시브총괄, CIO 등을 맡았다. 2002년 국내 시장에 처음으로 ETF로 상장하고 2009년과 2010년 아시아 첫 레버리지 ETF와 인버스 ETF를 각각 출시하는 등 국내 ETF 시장을 선도한 주역으로 손꼽힌다.
그는 "국내의 열악한 패시브 시장을 열었다. ETF과 관한 업적 등을 고려할 때 삼성자산운용에서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들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제가 생각하는 자산운용사로서의 사업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선 1호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일념으로 한투운용에 찾아왔다. 전통에서 혁신으로, 회사의 철학부터 개별 사업에 이르기까지 대폭의 변화와 재정립을 거치겠다"고 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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