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사 인사팀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 내용은 ‘무뼈닭발을 시킴’이었습니다.
고충처리담당자는 황당한 마음에 신고인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신고인은 울먹거리며 “무뼈닭발을 시킨 게 잘못”이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인사팀 내에서는 장난 신고라고 의심했지만, 고충처리담당자는 상황을 알아봐야겠다며 조사 일정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20일 후, 인사팀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체 어떻게 해서 무뼈닭발을 시킨 것이 직장 내 괴롭힘이 되는 것일까요?
등장인물은 총 3명입니다. 영업팀장 A, 영업팀원 B와 거래처 사장인 C. 이중 신고인은 영업팀원인 B였습니다. A와 C는 회사 간의 거래 관계로 알게 된 사이지만 십수년의 세월이 지나 지금은 상당히 돈독한 관계이고, B는 A와 함께 일한지 이제 5년 정도 된 대리급 직원이었습니다.
A는 팀원인 B를 업무적으로는 물론 업무외적으로도 상당히 신뢰하였습니다. B가 입사한 후 회사의 매출에도 큰 기여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직장동료들 사이에서 ‘상담사’로 통할 정도로 인덕이 두터웠습니다. 그래서 A는 거래처 사장인 C를 B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었습니다. 향후 본인이 퇴직할 때 B라면 C를 맡아줄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C도 B에 대해 궁금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020년 여름쯤, A는 C와 만나는 자리에 B를 불렀고, 셋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무뼈닭발을 함께 먹었습니다. 무뼈닭발은 A와 C가 함께 좋아하는 음식으로 둘의 사이가 돈독해진 계기가 된 것이기도 해 셋의 무뼈닭발 식사는 인수인계의 역사적인 첫 자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B는 영 무뼈닭발을 못 먹는 모양새였습니다. 의아해진 A가 왜 무뼈닭발을 먹지 않느냐고 묻자, B는 우물쭈물하며 답을 피했습니다. 이후 B는 서너 차례쯤 ‘무뼈닭발을 시키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이후 셋은 자주 만나서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고, B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회의 중 식사 시간이 되면 여지없이 무뼈닭발을 시켰습니다.
A는 B가 무뼈닭발을 단순히 좋아하지 않는다고만 여겼습니다. 먹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라며, B의 거듭된 요청을 무시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무뼈닭발이 매워서 못 먹는 거냐며 물에 씻어서 B의 앞접시에 직접 올려주기도 하였고, B가 계속해서 깨지락거리자 B에게 큰 소리를 내며 성질을 낸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B가 무뼈닭발을 먹은 것도 몇 차례나 되었습니다.
B가 직장 내 괴롭힘 신고서를 제출한 것은 2022년 초였습니다. A의 진술에 따르면 신고서를 접수한 당일, C와의 업무상 미팅과 이어지는 식사 자리가 있었고, 무뼈닭발을 주문했으며, 식당종업원이 잘 조리된 무뼈닭발 그릇을 식탁에 놓자마자, B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울면서 식당을 뛰쳐나갔다고 합니다.
A가 B의 상사인 점, 관계가 오래된 거래처와의 회식자리였다는 점에서 A가 B에 대해 지위상, 관계상 우위에 있다는 것은 명백해 보이지만, 과연 이 행위들이 업무와 관련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인지, 나아가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었다고 평가될 수 있는 것일까요?
조사를 통해 회식자리가 ‘업무의 수행과정’이었다는 점은 인정되었습니다. 매번 회식은 팀장인 A가 주도하여 업무상의 미팅에서 연속되는 자리였고, 개인 사유로 빠지기는 어려웠으며, 회식자리에서도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고, 회식비용도 A의 법인카드로 결제한 사실이 주변조사를 통해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고충처리담당자는 이 사건의 본질이 ‘B가 거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A가 B에게 무뼈닭발을 먹도록 강요한 행위’였다는 점에 착안하여, ‘음식을 먹도록 강요한 행위’는 업무의 연장인 회식자리에서의 업무상 필요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A는 단순 권유라 주장했으나, 권유의 적정한 정도를 넘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특히 그 권유가 무려 1년 반 동안 수십 차례나 지속적으로 반복돼왔던 일인 점도 판단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설령 식사 권유가 업무상 필요성이 있는 행위였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 양태는 사회통념상 상당한 범위를 넘었다고 보기에도 충분하다고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B가 무뼈닭발을 먹지 않는 이유는 누구도 알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B 본인도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평소에는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음식이 아닌데, 꼭 C와의 회식자리에서는 그 음식을 보기만 해도 멀미가 나는 기분이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고충처리담당자는 아마도 무의식에 숨겨진 과거의 부정적 기억이 있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었습니다.
다만, 이 사건은 ‘신고를 가벼이 여길 수 없다’는 점과 특히 ‘업무상 적정범위와 개인 존중’에 대한 강한 시사점을 줍니다. 회식자리가 업무의 연장이라고 보더라도 술과 음식이 함께 하는 이상 취향과 선호가 강하게 반영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마치 상대방이 싫어하는 행동 한 가지를 하는 것이 좋아하는 행동 열 가지를 하는 것보다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처럼, 개인이 특별한 이유가 없더라도 존중받고 싶은 사적 영역에 대해서는, 업무진행에 큰 하자가 없다면 아무리 상사-부하 관계더라도 존중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곽영준 행복한일연구소/노무법인 책임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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