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통화국이 되면 국채 발행에 따른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금융회사가 기축통화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보유하면 그 자체로 자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부채가 28조달러에 이르는 미국이 끄떡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축통화국 논란이 정부 재정지출 증가폭의 적정성과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원화는 이 같은 요건을 상당 부분 충족하지 못하고 있으며 가까운 시일 안에 충족될 가능성도 없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올해 1월 국제결제통화 비중을 보면 달러가 39.92%로 독보적 1위다. 그 뒤를 유로(36.56%) 파운드(6.3%) 위안(3.2%) 엔(2.79%) 캐나다달러(1.6%) 호주달러(1.25%) 홍콩달러(1.13%) 등이 잇는다. 한국 원화의 비중은 20위권 밖으로 0.1% 수준에 불과하다.
외환상품시장에서도 한국 원화는 변방에 머무른다. 국제결제은행(BIS)이 3년마다 발표하는 ‘세계 외환상품조사 결과’를 보면 2019년 원화의 거래 비중은 2.0%에 불과했다. 미국 달러화가 88.3%로 1위였고 유로화 32.3%, 엔화 16.8% 등의 순이었다.
각국의 외환보유액 지위에서도 마찬가지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작년 9월 말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59.2%였으며 유로 20.5%, 엔 5.8%, 파운드 4.8% 등이었다. 한국 원화는 이 비중이 0.2% 미만으로 추정된다. 한은 관계자는 “기축통화국은 위기에 견뎌낼 만한 경제 펀더멘털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며 “세계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기축통화라고 평가하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기축통화 논란이 확산되자 민주당은 해명 자료를 통해 “이 후보의 주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13일 내놓은 자료를 근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전경련은 ‘원화의 기축통화 편입 근거 제시-원화가 IMF 특별인출권(SDR) 통화바스켓에 포함될 수 있는 5가지 근거’라는 리포트를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전경련은 22일 보도참고자료를 배포하고 “한국 경제 안정을 위해 SDR 편입이 필요하다는 희망사항을 전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령 원화가 SDR 통화바스켓에 편입되더라도 기축통화로 인정받기는 어렵다. 현재 SDR은 IMF 회원국 간 공적 거래에만 일부 사용된다. 무역과 자본거래에서 SDR을 활용하지는 않고, 관련 금융상품도 없어 유동성 규모가 작다. 기축통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SDR 편입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평가도 있다.
선진국의 부채 비율을 살펴보면 일견 이 후보의 주장이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국가부채 비율이 252.3%에 이르는 일본을 비롯해 미국(130.7%) 프랑스(113.5%) 영국(107.1%) 등 대부분 선진국이 국가부채 비율 100%를 훌쩍 넘기고 있어서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기축통화나 준(準)기축통화로 인정받는 달러와 유로화, 파운드화를 사용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국제거래 비중이 미미한 비기축통화국 17개 중 한국의 국가부채 비율 순위는 9위로 결코 낮지 않다. 한국의 국가부채 비율은 55.1%(IMF 통계 기준)로 스웨덴(39.9%)과 칠레(37.3%)보다 많고 유로화를 사용하는 독일(69.8%)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마저도 위기 시 정부가 상환해야 할 공기업 부채는 빠져 있다. 한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공공부문이 공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이를 추가할 경우 한국의 국가부채 비율은 20%포인트가량 높아진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반적인 기준치를 제시했을 뿐 한국에 85%까지 지출을 늘리라고 한 것이 아니다”며 “더욱이 IMF가 한국에 국가채무 비율을 몇%로 유지해야 한다고 권고한 사실 자체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가계부채 급증의 가장 큰 원인은 주택 구입 및 전세대출 증가에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전세를 포함한 한국의 주택담보대출은 GDP 대비 61%에 이르렀다. 2008년 52%였던 수치가 뛴 것으로, 미국 스페인 등 상당수 조사 대상 국가에서 관련 비율이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지원이 적어서가 아니라 부동산 정책 실패로 가계부채가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재정 투입이 성장으로 이어지는 재정승수 효과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2018년까지 1보다 높았던 재정승수(1=재정 투입만큼 성장)는 2019년 이후 1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는 보건·복지·고용 등 고정비용에 해당하는 재정 투입이 늘어난 데 따른 결과다.
노경목/김익환/김소현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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