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선에서 개헌과 청와대 이전 만큼 단골로 등장한 공약도 없을 것이다. ‘약방의 감초’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번 대선에도 어김없이 두 공약이 나왔다.
청와대 이전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내놨다. 윤 후보는 집권 땐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에 있는 정부서울청사로 옮기고 청와대 부지는 역사관·시민공원 등으로 활용한다고 약속했다.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을 관저로 삼겠다고 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이전 준비에 들어가 임기 첫날부터 광화문 청사에서 근무한다는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현 청와대 집무실은 국빈 영접과 주요 행사가 있는 날에만 활용하고 그렇지 않은 날엔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서 근무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대통령 비서실 축소도 약속했다.
대선 때마다 청와대 이전 공약이 나오는 건 비효율적인 구조 때문이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청와대 본관과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등 참모들이 근무하는 여민관은 약 500m 떨어져 있다.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보고하려고 본관으로 가려면 걸어서 약 10분 걸린다. 급하면 차를 이용하거나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청와대 이전 공약이 매번 실현되지 않은 것은 경호 문제가 가장 큰 이유다. 광화문 정부 청사는 대로변에 노출돼 있어 테러에 노출될 수 있다. 군 관계자는 “광화문 청사는 테러범들이 마음만 먹으면 정면에서 직사화기로 공격할 수 있다”고 했다. 현 정부 광화문대통령시대준비위원회 자문위원을 맡았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청와대 이전 공약 백지화를 발표하며 “경호와 의전이라는 게 엄청나게 복잡하고 어렵다는 사실을 (문재인)대통령께서도 인지하셨다”고 말했다.
경호 문제만이 아닌 다른 이유도 있다. 청와대는 넓은 녹지 공간이 있어 근무하기에 좋다. 경호하기에도 편리하며 외빈들의 행사에도 안성맞춤이어서 대통령들이 한 번 들어온 뒤론 나가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1997년엔 김대중(DJ)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대선 후보와 JP가 후보 단일화를 선언했다. 두 사람은 대선 승리 땐 1999년까지 내각제 개헌한다고 합의했지만 집권 뒤 DJ가 이를 어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임기 말인 2007년 4년 중임제의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지만 한나라당이 반대하면서 무위로 돌아갔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땐 이명박·박근혜 후보가 집권하면 개헌하겠다는 공약을 내놨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2016년 10월엔 탄핵에 몰린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개헌을 전격 제안했으나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권력형 비리’를 덮으려는 정국 전환용이라고 반대하면서 논의 시작도 못했다.
개헌이 이렇게 무산된 데는 각 정파의 정치적 계산 앞섰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불리한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제시하고 야당은 퇴짜를 놓기 일쑤였다. 개헌이 자칫 국정 블랙홀을 부를 수 있기 때문에 현직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했더라도 섣불리 추진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내걸고 개헌을 약속했다. 그러나 야당이 불리한 대선 구도를 깨기 위한 정략이라고 반대하고 있는 데다 역시 국정 블랙홀을 초래할 수 있어 설령 이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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