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조직 편제를 재편하면서 노동정책과 노사관계를 전담하는 노동팀을 없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의 통합 추진을 통해 종합경제단체로 발돋움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본연의 업무를 도외시하고 ESG 등 노동과 거리가 먼 이슈에만 골몰한다는 회원사들의 지적을 받고 있다.
대한상의와 경총 등 주요 경제단체들의 최근 행보에 대해 회원사는 물론 경영계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주요 노동 이슈에 대해 회원사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기업 환경을 개선해야 하는 본업을 제쳐두고 '젯밥'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친노동을 표방한 현 정부 아래서 경제단체의 활동 폭이 좁아진 것은 현실적 한계라지만, 일각에서는 경제단체 스스로 '무장해제'하고 노동정책 및 노사관계 주도권을 넘겨주는 꼴이라는 비판도 있다.
대한상의는 기존 노동팀을 없애고 관련 인원들을 산업 정책실로 배정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이번 조직 개편은 노동팀을 산업정책실로 확대 개편한 것"이라며 "담당 업무는 노동과 지역경제인데, 사실상 노동이 주업무가 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노동이슈 전담 인력들이 정책실 업무까지 겸직하는 셈이라 노사관계 대응 전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등 주요 대선 후보들이 잇따라 대한상의를 찾아 자신의 노동 정책을 표방하는 등 대한상의를 경영계 측의 중요한 노동정책 파트너로 여기고 있는데도, 대한상의는 되레 노동정책과 노사관계 문제에 대한 대응력을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총은 22일 손경식 회장의 3연임을 확정했다. 손 회장은 전경련을 통합해 종합경제단체로 발돋움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해서 드러낸 바 있다. 전경련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뭉쳐도 모자랄 판에 경제단체 간 이런 불협화음이 나올 상황이냐는 핀잔도 들린다.
이 과정에서 노동 이슈보다 ESG에 골몰하는 모습도 눈총을 받고 있다. 경제단체 중 대한상의와 전경련이 이미 힘을 쏟고 있는 데 경총까지 나설 필요가 있냐는 비판이다. 성과급, MZ세대 노조, 정년연장 이슈 등 각종 주요 노사관계 이슈가 쏟아지는 가운데 힘을 분산시키고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최근 회비 인상 이후 규정을 변경해 임원들의 퇴직 후 처우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에도 일부 회원사들이 못마땅해 한다는 전언이다. 반면 젊은 인재들이 처우에 불만을 갖고 잇따라 이탈하며 내부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경영계는 이번 정부 들어 최저임금 협상에서 일방적으로 끌려다녔고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조법 개정에서도 이렇다 할 '전투력'을 보이지 못했다. 반면 노동계는 전에 없는 단합된 행보를 보이며 과거 어느 때보다 진용을 공고히 하고 있으며 보수 진용조차도 대선 국면을 맞아 노동계에 노동이사제 등 '선물'을 안기고 있다.
2000만 근로자의 삶과 이들을 고용하는 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노동정책과 노사관계는 시소와 같다. 노사 간 힘의 균형이 맞아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온다는 의미다. 경제단체들은 정부의 노동계 편향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 '본업'에 충실한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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