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려 이야기를 시작한다. 일본에 살고 있는 연구자 윤설영은 6년 전 사고로 8개월 동안의 기억을 잃었다. 어느 날 사고가 날 즈음 사라진 친구에게서 한 통의 이메일을 받는다. 그 친구의 별명은 ‘셜록’. 둘은 빨치산 여성 생존자에 대한 논문을 같이 썼던 사이였다. 몇 년 만에 낯설어진 서울로 돌아온 설영은 셜록의 담당의였던 성형외과 의사 구연정과 함께 셜록이 남긴 수수께끼 같은 메일의 알 듯 말 듯 한 단서를 추적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을 풀어낸다. 산에서는 동지에게, 내려와서는 공권력에 성폭력을 당한 여성 빨치산, 엘리트 가족의 일원으로 살기 위해 정체성을 억눌러야 했던 성소수자, 집단의 명예를 위해 사라져버린 퀴어 청소년 등이다. 작품 속 빨치산 생존자 할머니의 말이 처연하다. “우리 다 마릴린 먼로 같지 않나요? 아름답다고 추앙하다가 거부하면 부숴버릴 듯 달려드는 사람들. 여자로서의 삶은 평생 어딘가에 전시되는 것만 같았어요. 내 몸은 마치 공공 기물 같은 느낌이었죠.”
김건형 문학평론가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폭력의 계보를 보여주면서 정상과 비정상을 자의적으로 선택하고 배제하는 사회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추적한다”고 설명했다.
추리소설적 기법 덕분에 이야기에 흡입력은 있지만 여성을 피해자, 남성을 가해자로 놓는 피해자 중심 서사는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을 나란히 배치해 똑같은 폭력이 반복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겠지만, 여성이 겪은 폭력적 사건만을 사례 모음집 식으로 전달하는 것은 오히려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한 작가는 201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오늘의 작가상, 젊은작가상 등을 받았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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