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회에서 수천 년간 우정은 관계형 사회의 기초를 형성하는 신념 체계로 굳어져 왔습니다. 따라서 우정은 중국 문화 구조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신중국 탄생 이후 법과 제도가 정비되지 않았을 때,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우정은 사회적 자본으로 자원과 권력의 배분에 상당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중국의 고전에는 우정을 지키는 고사가 많이 나옵니다. 우정은 인간관계의 백미라고 할 만합니다. 대표적인 것은 춘추전국시대의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의 사귐을 표현한 '관포지교', 조(趙)나라의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 장군 간의 친구를 위해 목을 내놓을 정도의 사귐을 말하는 '문경지교'를 꼽습니다.
공자의 논어에도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며, 중국인의 우정관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대(唐代)의 시인 두보(杜甫)도 친구의 사귐이 어때야 하는지 빈교행(가난 할 때의 사귐)에서 친구 간의 변절을 손바닥 뒤집듯이 하는 세태를 개탄하며, 관중과 포숙의 우정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난한 때의 우정이 진짜 우정'입니다.
삼국지의 도원결의(桃園結義)나 수호지(水滸誌)에 나오는 108명의 영웅호걸의 사고를 지배하는 것은 우정이고, 사마천 사기열전의 협객 문화도 우정관에 바탕하고 있습니다.
현대 중국인의 우정은 어떤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체제는 개인보다 국가나 조직을 우선시 하므로, 개인 간의 우정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하위 개념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럼에도 우정은 중국인의 생활 속에 중요한 요소입니다. 친구 간에 이루어지는 계약서 없는 거래는, 서양의 관념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중국인의 DNA로 현실에서 작동되고 있습니다.
필자는 20년 이상 중국에서 생활하며 중국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지금까지 배반하는 친구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명절을 보낼 때는 빠짐없이 안부를 묻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한국에 확산할 때는 마스크도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국가 간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라고 합니다. 나라 사이에 우정이 존재할 수 없는 일 있을까요. 한·중 간 우호는 수교 이후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사드 배치 이후 중국 정부의 돌변으로 경색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의 본색이 드러났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한·중 간에는 반중(反中)과 반한(反韓) 정서로 감정의 골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4일 베이징에서 열린 올림픽 개막식에서 조선족 여성이 한복을 입고 댕기 머리를 하고 중국 국기 전달식에 중국 56개 민족 대표 중 한 명으로 등장하자, 한국인은 분노했습니다.
문제는 평소에 중국이 우리의 김치나 한복을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며 문화적 침탈을 해왔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우리 국민은 개막식에 조선족을 내 새워 한복을 중국화 하기 위한 '문화공정'의 하나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대한 책임은 동북공정을 통해 우리의 고구려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하는 등 왜곡을 일삼은 중국 측에 있습니다.
다만,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조선족이 한복을 입고 등장한 것은 중국의 '문화공정'으로 인식하는 것은 무리가 따르는 일입니다. 중국 내의 조선족들이 자기 민족의 고유 복장을 하고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매년 3월 개최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 대표로 참석하는 조선족은 우리의 전통 의복으로 입고 참석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문제 삼을 일이 아닙니다.
중국에 사는 조선족이 우리의 문화전통을 보존 유지하는 모습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 한복이 한국 고유의 복식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우리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4년 서울대 특강에서 임진왜란에서 보여준 이순신 장군과 명(明)의 진린 과의 400여 년 우정을 이야기했지만, 사드 체계의 한국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 정부의 보복으로 한·중간의 우의는 금이 갔습니다.
또한 시 주석은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한국을 평소에 우습게 보고 있는지 알 만합니다. 한·중 간의 우정이 끼일 여지를 중국 최고 지도자가 차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 정부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미미한 대응, 사드 배치에 대한 '3불 약속', 우리 해역에서 조업하는 중국어선에 대한 형식적이고 허술한 단속, 대통령의 중국에서의 혼밥과 기자 폭행에 대한 무대응, 홍콩과 신장웨이우얼에서의 인권침해에 대한 침묵 등 당당하지 못한 '굴종 외교'가 더 큰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인과 중국인은 우정을 나눌 수 없는 것일까요. 우선 중국을 혐오하는 태도는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중국에 대해서 주권국가로서 당당한 자세를 유지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유력 대선 후보자들은 표를 의식해서 반중 포퓰리즘 발언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후보자들이 얼마나 중국에 대해 무지한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국수주의와 전체주의에 빠져 있는 중국을, 자유와 인권 등 인류 보편의 가치를 가지고 중국에 당당하게 맞서야, 중국을 넘을 수 있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조평규 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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