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연료비 연동제 무산 '부메랑'…"한전, 올 적자 10조 넘을 것"

입력 2022-02-24 17:35   수정 2022-03-03 18:48

한국전력이 지난해 기록한 사상 최대 적자는 문재인 정부 들어 펼친 에너지 정책의 난맥이 켜켜이 쌓인 결과다. 지난해 유가, 액화천연가스(LNG), 석탄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동안 물가 안정을 이유로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면서 한전 적자 누적을 방치했다. 탈원전 정책에 따른 월성1호기 조기 폐쇄로 전력 생산비용이 높아진 가운데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부담도 고스란히 한전이 졌다. 이 같은 적자 급증세는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 기업으로서 한전의 지속 가능성까지 위협받고 있다.
비용 늘고, 요금은 그대로
한전은 2020년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저유가 영향으로 4조86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하지만 1년 만에 영업이익이 9조9464억원 줄면서 5조8000억원 넘는 적자를 냈다. 전기차 확대 등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로 같은 기간 매출은 약 2조원 증가한 60조5748억원을 기록했다. 연료비 상승으로 영업비용이 11조9519억원 늘어난 데 따른 결과다. 지난해와 비교해 한전 자회사의 연료비는 4조6136억원 증가했고, 민간발전사 전력구입비는 5조9069억원 늘었다. 하지만 이 같은 비용을 요금에 반영하지 못하면서 전기를 팔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이 됐다.

한전은 발전사들이 한전에 판매하는 전력도매가격(SMP)이 오르면 비용 부담이 증가하는 구조다. 지난달 SMP는 ㎾h당 154.42원을 기록했다. 이는 1년 전인 지난해 1월(70.65원)보다 118.6% 오른 수치다. 한전은 SMP 상승으로 인한 비용을 부담하기 위해 부채를 늘리고 있다. 지난달에만 2조3600억원 규모의 공사채를 발행했고, 이달 들어서도 1조8800억원어치(24일 기준) 공사채를 발행했다. 부채 증가에 따른 이자 비용 증가까지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되는 악순환이다.

하지만 정부는 2020년 말 연료비를 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고도 시행을 주저했다. 물가 상승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작년 2분기와 3분기 잇달아 전기료를 동결한 것이다. 작년 말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에도 올해 1분기 전기요금 역시 동결한 상태다. 정부가 탈원전·탈석탄 정책 기조 아래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서두른 것도 한전에 부담이 됐다. 발전단가가 비싼 태양광 및 풍력 생산 전력을 한전이 사줘야 하는 신재생에너지의무공급(RPS) 비율이 7%에서 9%로 늘어났다. 또 줄어든 원전 이용률을 메우기 위해 단가가 비싼 LNG 비중을 늘린 것도 한전 적자 급증에 중요한 요인이 됐다.
“요금 인상폭보다 원가 상승 더 가팔라”
통상 한전 실적은 유가 변동과 전기요금 인상 여부 등에 따라 좌우돼 왔다. 2016년에는 저유가 호황 덕에 영업이익이 사상 최대치인 12조원을 기록했다. 이후 유가 상승과 탈원전 정책 비용 등으로 2018년 2080억원, 2019년 1조2765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에 따른 저유가 효과에 4조863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 전환했고, 올해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한전의 올해 실적 전망은 작년보다 더 어둡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의 영향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장기화할 수 있어서다. 한전은 올해 4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기준연료비를 ㎾h당 4.9원 인상하기로 했다. 기후환경요금도 4월부터 ㎾h당 2원 오른다. 하지만 요금 인상이 시작되는 2분기 전까지는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하다. 계획된 요금 인상폭보다 유가 등 원가 상승이 더 가파르다는 점도 부담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요금 인상 시나리오에 변화가 없고, 배럴당 80달러 내외의 유가가 유지된다면 올해 10조원 이상의 영업적자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연료비 연동제를 원칙대로 적용하고 수요 관리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에너지 가격 상승세를 전기요금 인상이 따라가지 못하는 만큼 기준연료비, 기후환경요금 외에 연료비 연동제를 통한 요금 인상도 검토해야 한다”며 “현재 에너지 시장이 과거 오일쇼크에 버금가는 엄중한 상황인 만큼 전기 사용을 줄이기 위해 정책적 수단과 시장적 수단 모두 발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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