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은 발전사들이 한전에 판매하는 전력도매가격(SMP)이 오르면 비용 부담이 증가하는 구조다. 지난달 SMP는 ㎾h당 154.42원을 기록했다. 이는 1년 전인 지난해 1월(70.65원)보다 118.6% 오른 수치다. 한전은 SMP 상승으로 인한 비용을 부담하기 위해 부채를 늘리고 있다. 지난달에만 2조3600억원 규모의 공사채를 발행했고, 이달 들어서도 1조8800억원어치(24일 기준) 공사채를 발행했다. 부채 증가에 따른 이자 비용 증가까지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되는 악순환이다.
하지만 정부는 2020년 말 연료비를 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고도 시행을 주저했다. 물가 상승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작년 2분기와 3분기 잇달아 전기료를 동결한 것이다. 작년 말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에도 올해 1분기 전기요금 역시 동결한 상태다. 정부가 탈원전·탈석탄 정책 기조 아래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서두른 것도 한전에 부담이 됐다. 발전단가가 비싼 태양광 및 풍력 생산 전력을 한전이 사줘야 하는 신재생에너지의무공급(RPS) 비율이 7%에서 9%로 늘어났다. 또 줄어든 원전 이용률을 메우기 위해 단가가 비싼 LNG 비중을 늘린 것도 한전 적자 급증에 중요한 요인이 됐다.
한전의 올해 실적 전망은 작년보다 더 어둡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의 영향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장기화할 수 있어서다. 한전은 올해 4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기준연료비를 ㎾h당 4.9원 인상하기로 했다. 기후환경요금도 4월부터 ㎾h당 2원 오른다. 하지만 요금 인상이 시작되는 2분기 전까지는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하다. 계획된 요금 인상폭보다 유가 등 원가 상승이 더 가파르다는 점도 부담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요금 인상 시나리오에 변화가 없고, 배럴당 80달러 내외의 유가가 유지된다면 올해 10조원 이상의 영업적자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연료비 연동제를 원칙대로 적용하고 수요 관리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에너지 가격 상승세를 전기요금 인상이 따라가지 못하는 만큼 기준연료비, 기후환경요금 외에 연료비 연동제를 통한 요금 인상도 검토해야 한다”며 “현재 에너지 시장이 과거 오일쇼크에 버금가는 엄중한 상황인 만큼 전기 사용을 줄이기 위해 정책적 수단과 시장적 수단 모두 발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