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날 때 하늘 핑~ 돌면 이석증, 20분 넘기면 메니에르병 의심 [이선아 기자의 생생헬스]

입력 2022-02-25 16:50   수정 2022-03-11 00:44


경기도에 사는 50대 A씨는 최근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주변이 핑 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빈혈인 줄 알고 철분을 열심히 챙겨 먹었지만 어지럼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며칠 뒤엔 구역질까지 함께 났다. 기온이 떨어지면 자주 발병하는 ‘뇌졸중’일 수도 있다는 걱정에 병원을 찾았지만, 뜻밖에 A씨는 ‘이석증’을 진단받았다.

이석증은 귀 안에서 평형을 유지해주는 돌이 제자리를 벗어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발병한다. 보통 수일 안에 증상이 저절로 사라지지만, 고령층은 어지럼증 때문에 낙상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재발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삶의 질을 확 떨어뜨린다. 이석증과 비슷하게 어지럼을 유발하는 메니에르병은 청력 손실과 이명까지 동반한다. 전문가들이 어지럼이 생기면 병원을 방문해 정확한 원인을 찾고, 치료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이유다.
머리 움직일 때마다 어지럽다면 ‘이석증’

귓속 깊은 곳에는 고리 모양의 ‘반고리관’이 있다. 달팽이관 위에 붙어 있는 반고리관은 우리 몸이 어떤 자세를 잡고 있는지 파악해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돕는다. 반고리관 위에는 ‘이석’이라는 돌이 얹혀 있다. 일종의 칼슘 부스러기다. 이 돌은 중력, 가속도 운동 등을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석이 외부 충격, 바이러스 감염, 골밀도 감소 등 여러 이유로 인해 원래 위치에서 떨어져 나오면 반고리 안에 있는 액체를 따라 이리저리 흘러 다닌다. 그러면서 신경을 과도하게 자극하게 된다. 이럴 때 주위가 도는 듯한 증상이 생긴다.

이석증이 발병하면 ‘코끼리 코 돌기’를 여러 번 한 듯한 어지럼증을 느끼게 된다. 눈을 감아도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것처럼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느낌도 수시로 받는다. 속이 메스껍고 구역질·구토를 하기도 한다.

이석증으로 인한 어지럼증은 머리의 움직임에 따라 생긴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고개를 숙였다가 갑자기 들 때, 잠결에 돌아누울 때처럼 머리 위치가 갑자기 바뀌면 1~2분 정도 주변이 빙빙 도는 듯한 회전성 어지럼증을 느낀다. 이런 어지럼증은 보통 수분 이내에 사라진다. 하지만 어지럼증이 멈춘 뒤에도 머리가 무겁고 속이 메스꺼운 느낌이 지속될 수 있다.
메니에르병은 저음역대부터 난청
어지럼증뿐 아니라 청력까지 떨어진다면 메니에르병을 의심해야 한다. 메니에르병의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자가면역질환, 알레르기, 중이염 등으로 인해 달팽이관 안에 있는 내림프액의 분비·흡수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서 발병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이석증과 달리 메니에르병에 걸리면 ‘청력 이상’이 나타난다. 달팽이관 안 깊숙이 있는 액체인 내림프액은 소리 에너지를 감지해 뇌에 신경신호를 보내는데, 여기에 이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귀가 먹먹하다가 저음역대에서 난청이 생긴다. 고음역대에서 먼저 청력이 떨어지는 노인성 난청과 구분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청력 기능 자체가 떨어지기도 한다.

환자의 20~30%는 먼저 한쪽 귀에서만 청력 저하가 나타나다가 나중에는 양쪽 귀 모두 증상이 생긴다. 1분 이내에 어지럼증이 사라지는 이석증과 달리 메니에르병은 이런 증상이 20분 이상, 길게는 12시간까지 이어진다. 머리의 움직임과는 관계없이 증상이 나타나는 것도 메니에르병의 특징이다. 이명이 나타나고, 구토·오심이 동반되기도 한다. 만성으로 악화하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삶의 질이 떨어진다.

메니에르병에 걸렸더라도 사람에 따라 일부 증상만 나타날 수 있다. 강우석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어지럼증이라는 동일한 증상을 느껴도 원인이 다양하고 질환별 치료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이비인후과를 찾아 정확하게 진단받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석증 환자 70%가 여성
이석증과 메니에르병 환자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이석증으로 인해 병원을 찾은 사람은 2017년 35만3364명에서 2020년 41만1676명으로 17% 늘어났다. 메니에르병 환자도 같은 기간 14만6425명에서 16만3620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여성이 남성보다 이석증에 취약했다. 2020년 이석증 환자의 70%(28만9661명)는 여성이었다. 이 중에서도 절반가량이 50~60대 여성이었다. 변재용 강동경희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성이 남성보다 칼슘 대사에 취약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고 했다. 그는 “폐경기 여성은 호르몬 변화로 인해 칼슘대사 이상이 생길 수 있다”며 “이런 이유 등으로 이석증은 중년 여성 환자가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스 증가와 자극적인 식습관으로 인해 환자가 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노년층은 이석증을 더 주의해야 한다. 노년층은 뼈가 약하고 순발력이 떨어지는 탓에 낙상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낙상 시 고관절에 골절이 생기면 심한 통증과 함께 사타구니와 넓적다리 쪽이 붓는다. 움직이지 못하다 보면 기존에 갖고 있던 지병이 악화하기도 한다. 김태현 목동힘찬병원 정형외과 원장은 “노인에게 고관절 골절은 생명까지 위협하는 부상”이라고 했다.
난청 심하면 고막에 주사 맞아야
이석증과 메니에르병은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이석증은 일반적으로 특별한 치료를 받지 않아도 수주 이내에 호전된다. 하지만 어지럼증이 심하다면 ‘이석 치환술’ 같은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고개 위치를 돌리면서 이석을 원래 위치로 되돌리는 시술이다. 이석 치환술은 어지럼증을 일으키는 반고리관 위치에 따라 방법이 달라진다. 환자 스스로 하기보다는 이비인후과 의료진에게 받는 게 좋다.

메니에르병도 환자의 약 80%가 자연 치유된다. 하지만 어지럼증의 주기, 강도, 청력 손상 정도 등에 따라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전정 억제제, 오심·구토 억제제를 사용할 수 있다. 귀 안의 압력을 낮추기 위해 이뇨제, 혈류개선제, 스테로이드제를 투여할 수도 있다. 난청 증상이 심하면 고막에 직접 스테로이드제제 주사를 놓을 수도 있다.

메니에르병을 예방하려면 염분 섭취를 조절하는 것도 필요하다. 강 교수는 “메니에르병은 저염식 등 간단한 식사 조절과 약물치료만으로도 증상이 완화된다”며 “이런 치료를 받고도 어지럼증이 계속되면 수술적 치료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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