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기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수면의 질을 높이는 기술인 ‘슬립테크’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보도했다. 스마트워치, 피트니스 트래커 등 웨어러블 기기 보급이 확대되면서 슬립테크 수요가 급증했다는 분석이다. 스타트업, 빅테크뿐만 아니라 보험사, 병원, 정부기관 등도 슬립테크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수면 부족은 근로자들의 생산성에도 타격을 준다. 미국에서는 수면 장애로 인한 근로자의 결근 시간 합계가 연 1000만 시간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480만 시간, 독일은 170만 시간으로 조사됐다. 잠이 부족하면 업무 수행 능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고용주가 부담해야 하는 의료 비용도 늘어난다. 맥킨지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경우 수면 부족에 따른 생산성 감소로 발생하는 손실이 근로자 1인당 연평균 1300~3000달러인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수면의 질을 높이려면 자고 일어나는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라고 조언한다. 이른 아침에 자주 운동하고, 알코올과 카페인 섭취를 줄이는 것도 좋다고 한다. 잠자기 한 시간 전에는 휴대폰 같은 전자기기 사용을 자제하라고 당부한다. 기기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 빛이 망막을 자극해 각성도를 높이고 수면주기를 해치기 때문이다.
슬립테크 전문 스타트업은 더 화려한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핀란드 헬스케어 업체 오라헬스는 티타늄으로 제작된 스마트 반지 ‘오라링’을 판매하고 있다. 이 반지를 끼면 심박 수는 물론 혈중산소농도, 몸의 회복 상태 등을 실시간으로 점검할 수 있다. 미국 유명 모델 겸 방송인 킴 카다시안, 영국의 해리 왕손이 오라링을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라링이 시장의 주목을 받으면서 오라헬스는 가치 10억달러의 탄탄한 스타트업으로 성장하게 됐다.
영국 슬립테크 업체인 코쿤은 수면에 도움을 주는 ‘릴랙스 헤드폰’을 출시했다. 이 헤드폰을 착용하면 쓸데없는 주변 소음이 사라지고 수면에 도움이 되는 백색소음을 들으면서 잠을 청할 수 있다. 헤드폰에 장착된 센서는 뇌전도(EEG)와 사용자의 움직임을 추적한다. 미국 슬립테크 업체 에잇슬립은 스마트 매트리스로 주목받고 있다. 사용자의 체온 변화를 측정해 매트리스 온도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최적의 수면 환경을 조성해준다고 회사 측은 설명한다. 가격은 퀸사이즈 기준 2845달러다.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슬립테크 시장 규모는 급격히 커지고 있다. 리서치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츠는 2020년 세계 슬립테크 기기 매출이 125억달러에 달한 것으로 집계했다. 2027년에는 이 규모가 세 배 이상 급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마테오 프란체체티 에잇슬립 대표는 “우리 회사는 말 그대로 세계의 모든 사람을 고객으로 여기고 있다”며 “국적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잠을 자기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슬립테크 기기들은 꾸준한 기능 개선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코쿤 오라헬스 에잇슬립 등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서비스를 위해 최근 유료 멤버십 제도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꾸준한 수익을 낼 수 있다. 또 사용자들의 기기 이용 데이터를 축적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슬립테크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많다. 과학자들은 슬립테크와 관련해 엄격한 임상 연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무작위로 다수의 실험 참가자를 뽑아 플라시보(가짜 약) 실험을 거쳐야 한다는 얘기다. 잉고 피에제 독일 샤리테병원 수면센터장은 “삼성전자와 화웨이 측에 스마트워치의 수면 데이터 측정 방법을 공유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웨어러블 기기도 전극을 이용해 뇌에서 직접 데이터를 뽑아내는 수면다원검사보다 정확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과학자들은 슬립테크가 가벼운 불면증 환자와 잠자리에 예민한 사람들이 병원 치료를 받을지 결정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실시간으로 산소포화도를 관찰하면 수면 무호흡증 같은 수면 장애를 확인할 수 있다. 수면 무호흡증은 수면 중 호흡 정지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세계 약 10억 명이 이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피에제 센터장은 “궁극적으로는 어떤 웨어러블 기기도 수면의 질을 본질적으로 높일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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