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시민단체 등 외부인사들로 구성된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 국내 기업에 대한 주주제안 권한과 대표 소송 권한을 쥐여주려던 정부 방침이 보류됐다. “‘무소불위’ 수탁위를 앞세워 기업 전반을 압박하려는 것”이라는 여론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 측이 한발 물러선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연금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25일 서울 소공로 더플라자호텔에서 ‘수탁자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 개정안’을 논의한 끝에 결국 의결을 보류하기로 했다. 기금위는 소위원회를 구성해 계속 논의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번이 사실상 현 정부의 마지막 기금위인 점을 감안하면 향후 통과 가능성은 불투명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에 다룬 개정안은 국민연금 수탁위에 기업의 주요 경영 사안 전반에 대한 주주제안 권한과 경영진에 대한 대표 소송 권한을 맡기는 내용이었다. 현재 주주제안은 기금운용위가, 대표소송은 기금운용본부가 맡고 있는데 모두 수탁위에 넘기겠다는 것이다. 수탁위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지침)를 도입하면서 2018년 설립됐다.
한 기금위 참석자는 “기금 운용에 책임을 지지 않는 수탁위에 소송 권한을 준다는 점 때문에 기업들의 우려가 컸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엔 국민연금 기금위원 중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 박진규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박화진 고용노동부 차관, 김종훈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등 정부 측 위원이 모두 불참하고 1급 실장들을 대리 참석시켰다.
‘수탁자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 개정안’이 25일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서 통과됐다면, 수탁위는 국내 주요 상장사에 거의 모든 경영 간섭을 할 수 있는 전권을 갖게 되는 상황이었다. 수탁위는 지금까지 기업의 배당정책이나 임원 보수한도 등에서만 ‘비경영참여 주주제안’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당 안은 △법령 위반 우려로 기업가치가 훼손되거나 주주권익을 침해할 수 있는 사안 △지속적으로 반대의결권을 행사했으나 개선이 없는 사안 △기후변화 관련 리스크 대응에 관한 사안 △산업안전 관련 리스크 대응에 관한 사안 △이 밖에 기금운용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 등 모든 중점관리사안에 주주제안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영진에 대한 대표소송 제기 여부도 수탁위가 결정하도록 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이 때문에 경영계와 자본시장 전문가 사이에는 “정부가 노동계와 시민단체 등이 주도하는 수탁위를 앞세워 국내 기업의 경영 전반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라는 반발이 강했다.
김재후/김종우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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