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생활자, 사업자, 주부, 학생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사람이 요즘 부쩍 예민해졌다. 밥상물가와 원자재 가격이 10여 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뜀박질하고 있어서다. 치솟는 물가는 가계의 살림살이를 쥐어짜는 ‘스크루플레이션(screwflation)’ 상황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많다. 일각에선 뛰는 물가 때문에 생산이 차질을 빚어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 침체 속 물가 급등)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경고마저 내놓고 있다.
이번 인플레이션의 바탕은 코로나19가 경제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대거 푼 돈이 자리 잡고 있다. 기업들은 설비투자와 공급을 줄였는데 수요가 살아나면서 공급 부족이 발생했다. 석유 등 원자재 가격이 뛰는 와중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물가 급등세가 커지고 있다. 물가 오름세는 전방위로 번져가고 있다. 지난 1월 통계청의 소비자물가 품목 468개 가운데 1년 전보다 물가가 오른 품목은 339개에 달했다.
치솟는 물가에도 월급은 제자리에 머무는 취약 계층, 뜀박질하는 원자재 가격을 제품값에 전가하지 못하는 영세 기업·자영업자들이 특히 고통받고 있다. 물가가 이들을 쥐어짠다는 의미로 스크루플레이션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많다. 허용석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은 “올 들어 스크루플레이션 양상이 굳어지면서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생활 여건이 큰 폭으로 나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부 국가에선 이런 양상이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세계 2위 아연 제련업체인 프랑스 니르스타는 지난해 말 3주간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전기료가 킬로와트시(㎾h)당 50유로(약 6만원)에서 400유로(약 54만원)로 뛰자 내린 결정이었다.
물가·집값 폭등으로 지갑 두께가 얇아진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번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자재 가격 등 뛰는 물가로 어려운 기업에 임금 상승 요구까지 겹치면서 재료비·인건비를 제품 가격에 전가하거나 고용을 줄일 것이라는 우려도 상당하다. ‘수요·공급 충격→물가 상승→고용 감소·제품 가격 인상→물가 상승’ 악순환 고리가 생겨날 수 있다는 의미다. 장용성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공급 충격으로 기대 인플레이션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며 “임금 상승도 이어지면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임금 인플레이션 우려는 일부 현실화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상용근로자의 지난해 3분기(7~9월) 월평균 임금 상승률(5.0%)은 분기 기준으로 2018년 1분기(7.9%) 후 가장 높았다. 올 들어 임금 인상 폭은 더 커질 전망이다. 카카오가 지난 13일 사내 게시판에 연봉 협상 재원을 전년 대비 15% 늘릴 계획을 발표한 것을 비롯해 주요 기업들의 임금 상승 행진이 이어질 기세다. 삼성전자 노조는 사측이 제시한 7.5%의 임금 인상률보다 더 높은 수준의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침체를 전제로 한다”며 “올해는 물론이고 내년에도 경제가 잠재 수준을 웃도는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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