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이어령의 '여섯 번째 손가락'

입력 2022-02-27 17:39   수정 2022-02-28 00:18

“미키 마우스의 손가락이 몇 개일까요?” 이어령 선생의 질문에 말이 막혔다. 곧이어 대답이 돌아왔다. “4개! 애니메이션으로 미키 마우스를 그릴 땐 6분30초에 4만5000장의 그림이 필요해요. 손가락 5개를 그리면 시간과 비용이 엄청나게 들죠. 그렇다고 3개만 그리면 이상하게 보여요.”

그는 “월트 디즈니가 차고에서 생활할 때 빵 부스러기를 먹으러 온 생쥐를 자세히 살펴봤더니 앞발가락이 4개였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그러고 보니 디즈니의 ‘겨울왕국’에 나오는 눈사람 올라프의 손가락도 4개다. ‘아, 관찰자와 방관자의 차이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는 또 “모든 문명의 시작은 관찰에서 출발한다”며 “관찰 다음에 의미를 두라”고 말했다. 사물과 현상을 투시하는 ‘볼 관(觀)’, 본질을 입체적으로 꿰뚫는 ‘살필 찰(察)’의 경계에서 의미가 탄생한다는 얘기였다. 그다음에 성찰(省察)과 통찰(洞察)의 문이 열린다고 했다.

어느 날은 한국인의 손재주와 섬세한 감성이 ‘젓가락 문화유전자’에서 나왔다며 손가락을 현란하게 움직여 보였다. ‘가위바위보 문명론’과 ‘보자기 인문학’을 펼칠 때도 그랬다. 유년기에 고사리손으로 갖고 놀던 굴렁쇠를 서울올림픽 무대에 재현했다. 아날로그의 ‘접촉’과 디지털의 ‘접속’을 융합한 ‘디지로그’의 중요성도 함께 일깨웠다.

그의 손가락은 태양에 따라 움직이는 그림자처럼 다양한 방향을 가리켰다. 기업 경영에서는 상대를 밀고 누르는 ‘푸시(push)’보다 끌어당기는 ‘풀(pull)’의 시대가 왔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최고의 리더십은 허리띠와 같다”고도 했다. 너무 조이거나 풀지 말고 맸는지 안 맸는지 모를 만큼 조화로운 조직을 만들라는 얘기였다.

가끔은 손가락 끝을 자신에게로 돌렸다. 그 내면의 성찰 끝에 발견한 길이 《지성에서 영성으로》였다. ‘성공한 인생’의 의미를 물으면 《티베트 사자의 서》에 나오는 명구를 빌려 이렇게 답했다. “태어날 때 나는 울지만 주변 사람들은 좋아하고, 세상을 떠날 때 나는 웃지만 남들은 보내기 싫어 우는 인생, 이것이 성공적인 인생이지요.”

한국의 문화원형 콘텐츠라는 구슬을 꿰어 보배로 만든 그의 다섯 손가락은 이제 움직임을 멈췄다. 89년간의 생애를 뒤로하고 천상에 닿은 그의 여섯 번째 손가락은 또 어디를 가리키고 있을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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