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임기를 불과 석 달도 안 남겨놓은 시점에서 지난 5년간 금과옥조처럼 유지했던 정책 기조를 뒤집는 발언을 잇따라 하고 있다. 임기내내 ‘적폐’로 치부했던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의 재추진에 이어 소주성(소득주도성장)과 함께 양대 정책 기조인 탈원전의 전환도 시사했다. 흡사 교리처럼 떠 받들던 정책 기조를 손바닥 뒤집듯 바꾼 것인데, 뒤늦은 깨달음인지, 선거용 립서비스인지, 면피용 출구전략인지 엇갈린 해석들을 낳게 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은 애시당초 잘못된 데이터와 비전문가들의 주관적이고 편협된 견해를 바탕으로 수립된 엉터리 정책이다. 문 대통령이 탈원전을 에너지 정책의 근간으로 선언한 것은 2017년 6월 19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에서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총 1368명이 사망했다”며 “원전은 안전하지도, 저렴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아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말을 조목조목 따져 보면 그 근거가 한결같이 오류 투성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사망했다는 ‘1368명’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이재민이 된 17만명 가운데 지병, 스트레스 등으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이며, 대부분 노인이었다.(<대한민국 판이 파뀐다>참조) 이 정부의 탈원전 선봉장인 한국수력원자력 조차 △최대 지진력에 안전 여유까지 더한 내진설계 △일본 후쿠시마 원전과는 다른 가압수로형 설계 등을 들어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내세우고 있다. 원전이 발전단가가 가장 싼 최고의 경제적인 에너지원임은 더 말할 나위도 없고, 원전의 친환경성은 ‘EU 택소노미’에서 보듯 유럽조차 인정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은 한 편의 영화와 선거 캠프 주변인사들의 선동적이고 사탕발림적인 언사들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탄핵정국이 한창이던 2016년 12월 부산에서 재난영화 ‘판도라’를 본 뒤 “부산 시민들은 머리맡에 폭탄 하나 매달아 놓고 사는 것과 같다. 판도라 뚜껑을 열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 판도라 상자 자체를 치워야 한다”며 탈원전에 대한 마음을 굳힌다. 그의 탈원전 공약에 참여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원전과는 거리가 먼 비전문가들이다. 미생물전공학자, 하천토목학자 등 환경론자 성향의 비전문가들이 주도해 원책 정책의 골간을 수립했다. “앞으로 300년 동안 고등어 명태 대구는 절대 먹으면 안된다. 오늘 밤 유언서를 써서 쭉 10세대 내리 손손(먹지 말라고) 해야 한다”처럼 선동적인 발언에 혹 한 것이다.
이처럼 잘못된 근거를 갖고 독단적으로 나온 정책이니 그 후유증이 오죽 하겠는가. 탈원전 정책으로 세계 최강 수준인 한국의 원전 생태계는 다 망가져 버렸다. 원전 관련학과 재학생이 최근 3년새 20% 이상 감소했고, 원전 부품 공급업체 매출 역시 30% 가까이 급감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공기업 한국전력을 작년 6조원 가까운 초대형 적자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은 주요인중 하나 역시 원전이다. 원전 수출 또한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이 정부 들어 원전수주는 ‘제로’다. 누구 말마따나 내 집에서 불량식품이라고 먹지 말라고 하면서 남에게 먹으라고 하면 누가 사먹겠는가.
뿐만 아니라 대통령 의중에 따라 원전을 조기 폐쇄시키기 위해 경제성을 조작해 놓곤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로 문제가 되자 공무원들로 하여금 일요일 밤 11시 사무실에 들어가 관련자료 444건을 삭제토록 한 범죄행위는 또 어찌해야 하는가.
현 정부 들어 폐쇄·백지화된 원전 7기로 초래된 손실액은 1조445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막대한 폐해를 낳아놓고 사과 한마디 없이 ‘원전 복구’로 전환하는 것처럼 얼버무리는 것은 옳지 않다. 더군다나 진정한 정책 전환이 아니라 원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경북 지역 주민들을 향한 대선용 ‘립서비스’이거나 퇴임후 면피를 위한 ‘알리바이 만들기’라면 더 비난받을 소지가 더 크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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