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부가 성인지 감수성 예산을 30조원 썼다고 알려졌다. 그중 일부만 떼어도 우리가 이북의 말도 안 되는 북핵 위협을 안전하게 중층적으로 막아낼 수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지난 주말 경북 포항시에서 유세 중 이렇게 말했다. "성인지예산 30조로 북한의 핵 위협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윤 후보가 성인지 예산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성인지 예산은 특별한 정책 사업에 따로 편성한 예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으로 윤 후보는 '성인지 예산'을 꺼내들었다. 윤 후보는 “우리 정부가 성인지감수성 예산이란 걸 30조 썼다고 알려져 있다. 그 중 일부만 떼어도 우리가 이북의 저런 말도 안 되는 핵위협을 안전하게 중층적으로 막아낼 수 있다”고 했다.
윤 후보는 앞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했다. 안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성인지 예산을 콕 집어 언급한 것도 이런 공약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성인지 예산 규모는 지난해 34조9311억원, 올해는 26조8821억원을 기록했다. 액수가 크다보니 한때 “국방비와 맞먹는 예산을 성인지 예산에 쓴다”며 여가부 폐지론의 단골 근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성인지 예산은 윤 후보가 말하는 것처럼 똑 떼어서 안보 정책에 가져다 쓸 수 있는 예산이 아니다. 특정한 사업을 위해 새로 편성되는 별도의 예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 부처에 이미 존재하는 사업을 ‘성인지 예산’이라는 기준으로 분류하는, 일종의 '분류 기준'이다. 어떤 정부 사업의 예산이 성평등 관점에서 적절하게 쓰이는지 점검해 성평등에 영향을 주는 사업이라면 ‘성인지 예산 사업’으로 명명하는 식이다.
올해 성인지예산에서 청년내일채움공제 같은 '간접목적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2%(22조2847억원)다. 성별영향평가 결과가 미흡해 개선이 필요한 사업, 사람들에게 재원을 나눠줘 성평등에 기여하는 사업, 그 외에 다양한 방식으로 성평등 실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사업들이다.
교육부의 '장애학생교육지원'(130억원),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인 창작안전망 구축'(779억원),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업인연금보험료 지원'(1743억원) 등도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윤 후보가 말하는 것처럼 성인지 예산을 안보 정책에 쓰려면, 고용노동부, 교육부, 문체부 등 다양한 부처의 사업들에 쓰이던 예산을 가져다 써야 하는 것이다.
어떤 사업이 성인지 사업으로 선정되는지도 여가부가 정하지 않는다. 기획재정부가 성인지 예산서를 작성하는 지침과 사업 선정 기준 등을 마련하고, 여가부는 여기에 자문 등 지원을 할 뿐이다. 또 어떤 사업을 성인지 예산 사업으로 올릴지는 각 부처의 몫이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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