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지능(신진서+인공지능).’ 거침이 없다. 패배를 모른다. 지난해 가을 이후 국제 메이저 기전인 춘란배와 LG배를 연거푸 따내 현역 2관왕에 등극했고, 지난달 열린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선 4연승으로 한국 우승을 이끌었다. 중국 미위팅 9단, 일본 위정치 8단, 중국 커제 9단, 일본 이치리키 료 9단을 내리 격파했다. ‘한·중·일 바둑 삼국지’라 불리는 농심신라면배에서 지난해 5연승에 이어 9연승을 거뒀다.
국내 기전에선 드물게 패점을 기록하지만 국제 무대에서는 난공불락이다. 지난해 6월 8일 중국 갑조리그에서 양딩신 9단에게 승리한 이후 외국 기사와의 공식대국에서 28연승을 달리고 있다. 중국 기사에게는 23연승 중이고, 일본 기사에게는 2012년 프로 입단 이후 단 한 판도 져본 적이 없다. 일류 기사가 맞붙는 국제 기전에선 거의 불가능한 기록이라는 게 바둑계의 평가다.
1일 한국기원 사무실에서 만난 신진서 9단은 “(외국 기사와 둘 때는) 마음가짐이 달라진다”고 했다. “무엇보다 기세가 중요한데 밀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국제대회는 준비 기간이 비교적 여유가 있어 대국자에 대한 대비를 더 잘 할 수 있죠. 국내 대회와는 달리 속기전이 거의 없어 어쩔 수 없는 변수도 적고요.”
‘중국 1인자’ 커제 9단은 농심신라면배에서 신 9단에게 완패한 직후 SNS에 “이게 인간인가? 신진서의 이번 대국 장악력은 알파고보다 더 강하다는 느낌이었다. 신진서를 대적할 만한 기사가 없다”란 글을 올렸다. 얼핏 신 9단을 칭찬하는 듯한 발언으로 들리지만 일부 중국 팬들이 제기한 음모론에 편승하는 뉘앙스를 풍겨 논란이 됐다. 음모론 내용은 ‘신 9단이 화장실 이용 등을 위해 대국 중 자리를 비울 때 인공지능(AI)을 커닝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신 9단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직업정신을 갖춘 프로라면 생각도 할 수 없고 가능한 일도 아니죠. 바둑계에 영향력이 큰 커제 9단이 AI 얘기를 꺼냈다는 자체가 중국 바둑팬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줄 수 있죠. 한국 바둑계뿐 아니라 바둑 전체를 무시하는 행위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 리셴하오에게 패하고 나서도 AI 운운해서 욕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요. 동료 기사로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신 9단은 커제와의 대국에서 AI가 예상하는 최적의 수(블루 스폿)와 실제로 둔 수의 일치율이 70%에 달하는 등 완벽에 가까운 내용을 선보였다. “농심신라면배에서 최고의 대국”이란 평가가 나올 정도다. “커제가 예상한 대로 둬줘서 준비한 대로 두면 됐기 때문에 편했습니다. AI 덕분에 한 포석만 계속 두면 이해도가 깊어지는데요. 커제가 최근 한 포석만 고집하고 있어 준비하기 쉬웠습니다. AI를 공부하는 기사들끼리 둘 때는 상대적으로 예상하기 쉬운 면이 있죠.”
신 9단은 신공지능이란 별명이 말해 주듯이 대국 중 AI 싱크로율이 높다. 현 바둑계에서 AI와 가장 가까운 기사로 꼽힌다. “대국 중 도저히 다음 수가 떠오르지 않을 때 AI라면 어디에 둘까 생각해 본 적은 있죠. 하지만 나만의 최상의 수를 두는 게 맞습니다. AI는 배우는 것이고 저만의 장점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 9단은 2012년 데뷔 당시에도 ‘신동’으로 주목받았다. 당시에 비해 명실공히 세계 1인자로 등극한 지금의 실력은 얼마나 늘었을까. “그때는 AI가 없었기 때문에 엄청 늘었죠. 최소 두 점 이상 강해지지 않았을까요. 지금의 AI 실력은 이세돌 사범과 대국한 알파고보다 훨씬 셉니다. 점점 강해지고 있죠. 새로운 정석도 계속 나오고요. 그만 세졌으면 좋겠는데 앞으로도 공부할 게 참 많습니다.”
“현재 최강 AI와 모든 것을 걸고 둔다면 몇 점을 놓고 승부하겠느냐”고 물었다. “석 점을 놓으면 둘 만할 것 같고요. 은퇴까지 걸고 둔다면 넉 점은 놔야겠죠. 하하.”
신 9단의 세계 우승 횟수는 3회(LG배 2회, 춘란배 1회)다.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이창호 9단(21회), 이세돌 9단(18회)은 물론 커제(8회)에도 한참 못 미친다. “출발이 늦어 선배들(이창호·이세돌)의 기록을 깨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커제의 기록은 넘어서는 게 목표입니다. 자만하지 말아야죠. 오는 9월 열리는 아시안게임과 올해 남은 세계 대회에서도 우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송태형 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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