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성공적인 에너지 전환, ESS에 달렸다

입력 2022-03-02 17:20   수정 2022-03-03 00:09

에너지 전환(energy transition)이 세계적인 화두가 되고 있다. 석유·가스·석탄 등 ‘화석연료 삼형제’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로 전환해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자는 것이다. 이는 기후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인류가 후손에게 깨끗한 지구를 넘겨줄 수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부상한 바람과 태양은 그 자체로 직접 사용되지 않고 전기 형태로 쓰이는 에너지원이다. 따라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지는 미래는 ‘전기화(electrification)의 시대’가 될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전기 수요는 더 증가할 것이고 전기 생산·송전·배전 등의 영역에선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2050년이 되면 전기 수요는 지금의 3배 이상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전기는 대부분 새로 만든 것이다. 전기를 저장할 수 없기에 어떤 나라도 아직은 전기를 전략물자로 비축하지 않고 있다. 새로운 전기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는 지금까지 저장할 수 없었던 전기를 대량으로 저장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특히 간헐성이 높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질수록 전기 저장의 중요성은 높아진다. 바람이 불 때 만든 전기를 저장해 바람이 불지 않을 때 쓸 수 없다면 풍력발전의 효용은 현저히 낮아진다. 또 전력 수요를 초과하는 과도한 전기 생산이 전력계통에 미치는 치명적이면서 불가역적인 영향을 막기 위해서도 전기 저장은 필수적이다.

재생에너지가 보편화하기 전에는 양수(揚水) 발전 방식으로 전기 저장이 이뤄졌다. 양수 발전은 고도가 낮은 곳에 있는 물을 높은 곳으로 끌어 올려 낙하시킴으로써 전기를 만드는 것이다. 전기 수요가 없는 시간에 남아도는 전기를 활용해 하부 저수지의 물을 끌어 올리고, 전기가 필요한 시간대에 그 물을 이용해 전기를 만들어 사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입지를 구하기도 어려워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 발전하는 에너지 기술은 리튬이온배터리를 이용한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빠른 속도로 개발하고 있다.

ESS는 ‘전기는 흘러갈 뿐 저장할 수 없다’는 상식을 뒤집어 남은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한 뒤 필요한 시간대에 사용하도록 하는 장치다. 최근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정신과 재생에너지 증가 등이 맞물려 세계 ESS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우드매킨지 자료에 따르면 2030년까지 매년 30% 이상 커질 전망이다. 지난해에만 배터리 용량 기준으로 전 세계에 약 11GWh(기가와트시) 규모의 ESS가 보급됐다. 특히 미국은 올해 9GWh 규모의 ESS를 추가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산업 육성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전력회사에 일정 비율의 전력은 ESS를 이용해 공급하도록 의무화하고, 신재생에너지와 함께 설치되는 ESS에 세제 혜택과 요금 할인 등 각종 지원책을 마련해 ESS 확산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ESS산업은 한때 정부의 과감한 지원과 수요 확대로 빠르게 성장했다. 이를 통해 핵심 기술과 많은 시공 경험을 확보했다. 최근 방문한 미국 실리콘밸리의 다수 벤처투자 회사는 미국 ESS 시장 확대가 한국 기업에 좋은 사업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국내 ESS산업 생태계는 과거 화재 사고 이후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화재 원인으로 지적된 많은 부분이 업계의 배터리 기능 개선과 정부의 가동률 제한 정책 등으로 어느 정도 해결책이 나왔음에도 시장은 아직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세계 시장에서 인정하는 국내 산업의 기술력과 시공 경험을 제대로 평가해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더욱이 정부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온실가스 40%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와 더불어 ESS 확대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ESS 투자를 활성화할 정책을 조속히 마련해 국내에도 안정적인 ESS산업 생태계가 다시 구축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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