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보급에 실패한 장수

입력 2022-03-02 17:21   수정 2022-03-03 00:14

“빵은 가장 무서운 적이다. 굶주린 병사들은 단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한다.” 자기 나라(러시아) 속담인데도 등잔 밑이 어두웠을까.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군이 당초 기대한 속전속결 전략이 먹히지 않으면서 ‘보급 애로’에 직면했다는 외신이 이어진다. 거센 우크라이나의 저항에다 대규모 병력을 넓은 전장에 동시 투입한 탓이다. 급기야 러시아 군인들이 구멍가게에서 식료품을 약탈하는 장면까지 전해졌고, “며칠간 음식을 먹지 못한 것 같다”는 증언도 나왔다.

인류 전쟁사에서 승패는 결국 보급(병참)이 좌우했다. 중국 초·한전쟁 때 항우가 유방에게 패한 것이나, 로마를 기습한 한니발과 아테네까지 점령한 페르시아가 몰락 또는 철수한 결정적 이유도 보급선이 끊겼기 때문이다. 거꾸로 중국 삼국시대 관도대전에선 원소의 병참기지 오소를 기습한 조조가 불리한 전세를 뒤집는 장면이 나온다. 근대로 넘어오면 1812년 러시아 원정에 나선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가 보급 문제로 병력 45만 명 중 44만 명을 잃기도 했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보다 강했던 러시아가 패전한 것도 시베리아 횡단철도 완공 전이라 만주지역 보급에 어려움이 컸던 탓이다.

멀리 볼 것도 없다. 6·25 당시 낙동강 전선에서 아군이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길게 형성된 북한군 보급선을 차단하는 작전이 효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그사이 부산항으로 들어온 유엔군 물자 덕에 1950년 9월 초순엔 병력 2 대 1, 화력 10 대 1, 전차 5 대 1로 아군이 우세했다.

군사전문가들은 “불리한 전황에서 하수는 공격, 중수는 방어, 고수는 병참을 생각한다”고 얘기한다. 세계를 제패한 나라의 군대는 그런 고수에 해당한다. ‘병참으로 이기는 군대’라는 로마군은 전투 중에도 도로 평탄화·직선화 작업을 했다. 미군은 ‘현대판 로마군’이다. 남북전쟁 이후 어떤 상황에서도 보급선이 끊긴 경우가 없었다. 세계대전 때는 미군 병사 한 사람의 육류 섭취량이 유럽 중산층보다 많았다고 전해진다.

우크라이나 전황을 보면 “나는 훈장보다 한 방울의 기름이 더 필요하다”고 한 독일 롬멜 장군 같은 지휘부가 러시아 군에 없는 것 같다. 물론 푸틴 대통령의 오만과 과욕이 더 큰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다. “작전엔 실패해도, 보급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했다. 병사 입장에서도 ‘배식(配食)’에 실패한 리더(푸틴)를 믿고 전투를 수행할 마음이 생길까 싶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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