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 돈만 줄줄"…저금리라며 올린 보험료, 금리 뛰어도 안 내리네

입력 2022-03-04 09:36   수정 2022-03-04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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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 기조에 생명보험사들이 잇따라 올렸던 보장성 보험료가 정작 시장금리 상승 국면에선 내려가지 않아 보험 가입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저금리를 이유로 '예정이율'을 인하해 보험료를 올려받은 생보사들이지만, 금리 상승이 1년을 훌쩍 넘긴 시점에도 예정이율 조정 계획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3대 대형 생보사인 삼성·한화·교보생명의 보장성보험 이달 공시이율은 2.0∼2.2%로 파악됐다. 한화생명 2.2%, 교보생명 2.0%로 1년 전과 같고 삼성생명은 같은 기간 0.1%포인트 내린 2.0%였다. 공시이율은 금리연동형 상품의 환급금을 좌우한다. 공시이율이 내리면 보험상품 만기환급금이 줄어든다.

더 큰 문제는 예정이율이다. 예정이율이란 장기 보험 계약자에게 약속한 보험금을 지급하기 위해 보험료에 적용하는 이자율이다. 예정이율이 떨어지면 보험료를 더 내야 만기 시 원하는 보험금을 탈 수 있다. 따라서 예정이율이 하향되면 보험료 인상으로, 예정이율이 상향되면 보험료 인하로 연결되는 구조다.

이 예정이율이 지난 2년간 줄곧 떨어지기만 했다. 3대 생보사는 저금리 기조를 이유로 예정이율을 내린 바 있다. 생보사는 채권 등 장기 금융상품에 보험금을 투자, 이로 인한 수익을 보험금으로 지급한다. 저금리가 계속되면 생보사들이 보험료로 지급할 수익을 달성하기 어려워지는 만큼, 예정이율을 하향 조정해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를 올리는 것이다.

삼성생명은 2020년 4월 보장성보험 예정이율을 2.5%에서 2.25%로, 지난해 다시 한번 2%로 낮췄다. 교보생명도 2020년 4월 예정이율을 2.5%에서 2.25%로 조정한 뒤, 작년 한 차례 추가 인하했다. 한화생명은 2020년 4월과 7월 연달아 예정이율을 낮추면서 기존 2.5%에서 2%로 조정했다. 예정이율이 연 0.25%포인트 낮아지면 보험료는 통상 7∼13%가량 인상된다.

이후 2020년 하반기부터 시장금리가 오름세로 돌아섰지만 생보사들은 예정이율을 인상하지 않았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2020년 7월 1.360%에서 지난달 2.690%로, 국고채 30년물 금리는 같은 기간 1.558%에서 2.618%로 뛰었다. 시장금리 추가 상승 여지도 큰 편이다. 미국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Fed)이 인플레이션을 잡으려 긴축을 가속할 것으로 보이고, 한국은행도 계속 기준금리 추가 인상 의지를 내비치고 있어서다.

그런데도 예정이율 조정 계획이 없다는 게 3대 생보사의 공통된 입장. 한화생명 관계자는 "시장금리 변동에 따라 예정이율이 조정될 수 있으나, 현재는 시장 상황을 조금 더 살피고자 한다"며 "당장 예정이율 인상 계획은 없다. 조정 시점과 조정폭 등에 대해 언급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삼성생명 관계자도 "예정이율 인상 계획은 정해진 바가 없다"고 밝혔다. 시장금리가 내릴 때 예정이율을 줄곧 낮췄던 보험사들이 본격 금리 인상기에는 예정이율 인상에 소극적이란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물론 생보사가 보장성보험 예정이율 인상을 주저하는 데에도 이유는 있다.

일단 보장성보험의 경우 한 번 설정된 예정이율로 보험계약이 체결되면 계약 만기 시까지 장기간 유지돼 인하보단 인상 조치에 수반되는 셈법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또 내년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이 도입되는 등 보험업계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경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취지에서도 예정이율 조정이 어려울 수 있다고 봤다.

노건엽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예정이율은 장기적 금리 추세에 따라 결정될 뿐 아니라, 한 번 정해지면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보험사들이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사안"이라면서 "보험사들이 당장 내년부터 IFRS17을 시행해야 하기 때문에 경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의사 결정에 더욱 소극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미국 중심의 통화 긴축이 올해부터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 기정사실화된 만큼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보장성보험 예정이율 조정이 이뤄질 수 있다고 봤다. 실제로 보장성보험보다 가입 기간이 짧아 상대적으로 경영 리스크가 낮은 편인 저축성·연금보험의 경우 올해 초부터 공시이율이 오르고 있다. 삼성생명은 이달 연금보험 공시이율을 0.04%포인트 상향한 2.44%로 조정했다. 한화생명도 연금보험과 저축성보험 공시이율을 각각 0.02%포인트 인상한 2.44%, 2.35%로 정했다. 교보생명 역시 연금보험 예정이율을 2.40%에서 2.42%로 올렸다.

노 연구위원은 "올 하반기부터는 보험사들이 금리 인상 장기적 추세 여부를 판단하고 보장성보험 예정이율 조정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시장금리 변동으로 저축성·연금보험 공시이율이 움직이고 있다. 통상 이들이 먼저 조정되고 이후 보장성보험 공시이율과 예정이율이 움직이는 양상을 감안하면 예정이율 조정 시기가 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은 금리 인상기에 진입한 만큼 시장금리 변동에 따른 예정이율 및 공시이율 동향을 집중 모니터링하겠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예정이율과 공시이율의 경우 가입자 보험료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시장금리 변동에 맞는 움직임을 보이는지, 조정폭이 적절하게 산출되는지 등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통상 4월에 상품 개정 및 예정이율 조정이 이뤄지므로 이율 산정 왜곡 여부를 파악하는 데 특히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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