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날이 오면 만화방창(萬化方暢)이라는 말처럼 온갖 생물이 나서 자라고 흐드러집니다. 남도의 꽃 소식과 함께 고양이처럼 나른하고 포근한 봄이 왔습니다. 그런데도 봄을 봄답게 느끼지 못하는 것은 꽃샘추위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봄보다 먼저 바짝 다가온 오미크론과 지구촌의 가슴 아픈 전쟁 소식이 마음을 얼어붙게 해서입니다. 하지만 전쟁이나 역병도 언젠가는 지나가겠지요. 그리고 멈췄던 시간들과 상처에 대해 이야기할 날이 올 것입니다. 우울한 기분을 털어 내려고 봄기운 완연한 부산의 바다와 공원을 찾았습니다. 생동하는 에너지가 터져 나올 것 같은 부산으로 봄을 맞으러 떠나보시죠.
동해남부선 옛 철길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 일제의 자원 수탈과 일본인들의 해운대 관광을 위해 건설된 치욕의 역사를 안고 있다. 해방 후에는 포항~경주~울산~부산을 잇는 서민들의 교통수단으로 이용되다 협소한 지형 때문에 복선전철화하지 못한 채 2013년 12월 폐선됐다. 사라질 뻔했던 옛 철길은 아름다운 바다 경관 덕분에 지난해 10월 ‘블루라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해운대블루라인파크에서는 해안선을 따라 달리며 바다를 조망하는 해변열차와 스카이캡슐을 운영한다. 해변열차는 외국에서 노면 전철로 흔히 쓰이는 트램 형태여서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스카이캡슐은 빨강·파랑·노랑·초록 등 알록달록한 색감이 특징이다. 해변열차와 스카이캡슐이 운행되면서 이 구간 해안 풍경마저 화사해졌다.
해변 열차 내부는 높낮이가 다른 2열 좌석과 통창으로 꾸며져 있어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선로 옆으로 해송이 줄지어 서 있고, 바다 쪽으로는 데크 길도 놓여 있다. 미포역을 떠난 열차는 시속 15㎞로 천천히 움직인다. 첫 번째 정거장인 달맞이터널에 내려 데크 길을 따라 달맞이고개 해월정에 오르자 11시 방향으로 대마도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데크 길은 몽돌해변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 역인 청사포역에 내려 푸른 하늘과 바다, 해송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감상하며 600m쯤 걷다 보면 바다 위에 높이 세워진 아찔한 스카이워크가 보인다. 높이 20m, 길이 72.5m인 다릿돌전망대다. 전망대 아래로 에메랄드 보석을 쏟아부은 듯 아름다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전망대 끝자락에는 반달 모양의 투명 바닥을 설치해 바다 위를 걷는 듯 스릴이 넘친다. 전망대 바로 앞에서부터 해상 등대까지 가지런히 늘어선 암초 5개가 마치 징검다리 같아서 다릿돌로 불리게 됐단다. 전복, 멍게, 해삼, 성게가 풍부해 해녀들이 물질하는 곳이기도 하다.
신비로운 해안 절경을 높이 7~10m의 공중 레일에서 관람하는 스카이캡슐도 블루레일파크에서 놓칠 수 없는 즐길거리다. 해변열차가 오가는 기존의 철로보다 높이 조성한 공중 레일로 운행하기 때문에 시야가 탁 트인다. 이색적인 스카이캡슐 분위기와 환상적인 바다 풍경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스카이캡슐은 미포에서 청사포까지 2㎞ 구간만 자동으로 운행하는데, 시속 4㎞로 아주 느리게 간다. 일몰 무렵 바다의 색깔이 변할 때면 사진 솜씨가 없어도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다.
잔디광장과 생태연못, 평화의광장 등으로 구성된 공원의 싱그러운 자연 속에 평화를 주제로 한 조형물이 어우러진다. 지역민과 작가들이 힘을 합쳐 평화의 염원을 담은 ‘평화의 문’, 평화로운 마음과 몸짓으로 어울려 춤추는 형상을 표현한 ‘평화의 춤’ 등 다양한 조형물이 있다. 그중 ‘Peace’라는 알파벳 조형물이 인기다.
평화공원과 바로 연결되는 대연수목전시원은 가볍게 걷기 좋은 공간이다. 침엽수원, 유실수원, 무궁화원, 열대식물원, 죽림원, 허브동산, 장미원 등에 다채로운 수목을 전시해 구간별로 색다른 분위기를 느끼며 산책할 수 있다. 매실나무, 사과나무, 살구나무 등이 가득한 유실수원은 봄날 꽃 구경하기에 제격이다.
부산=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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