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이이잉~”
요란하게 울리는 모터 소리가 귀를 때린다. 눈에 들어온 것은 빨강·파랑 LED 불빛을 내뿜는 지름 15㎝ 무인비행기. 시속 200㎞ 속도로 축구장 크기만 한 경기장을 날아다닌다. 링 깃발 등 장애물을 통과할 땐 코너링부터 U자형 커브까지 돈다. ‘하늘에서 펼쳐지는 포뮬러원(F1)’이라고 불리는 ‘드론 레이싱’ 모습이다.
시속 200㎞, ‘공중의 F1’
드론 레이싱은 드론을 조종해 링 깃발 등 장애물을 통과하는 스포츠다. 주어진 코스를 최단 시간에 완주한 선수가 승리한다. 선수는 전용 고글을 끼고 경기에 참여한다.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은 실시간으로 고글에 비행 장면을 전송한다. 고글을 낀 선수는 그 영상을 보고 드론을 원격 조종한다.레이싱용 드론의 순간 최고 속도는 시속 180~200㎞에 이른다. 100m를 2초 초반에 주파한다. 사소한 실수로 장애물을 늦게 통과하면 그대로 순위에서 뒤처진다. 0.1초 차이에도 승부가 갈린다. 고도의 집중력과 순발력, 세밀한 조종 능력이 드론 레이싱 선수에게 그래서 중요하다. 하늘에서 펼쳐지는 F1으로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드론 레이싱에 쓰이는 드론은 일반 드론과 다르다. 선수들은 개별로 부품을 직접 산 뒤 레이싱용 드론을 제작한다. 최고의 속도를 뽑아내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가벼운 프레임과 속도가 빠른 모터를 구하고자 한다. 이를 드론 레이싱업계에선 ‘손수 만든다’는 의미의 ‘DIY(Do It Yourself)’라고 부른다. 15㎝ 남짓 작은 기계에 들어가는 부품은 프레임 모터 수신기 카메라 등 10여 개에 달한다.
아직 생소한 분야여도 국가대표 선수까지 있다. 손영록 선수는 2019년 10월 대구에서 열린 ‘국제드론레이스 월드컵’에 한국 대표로 출전해 단체전 우승을 거머쥐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산하 국제항공연맹(FAI) 승인을 받은 공식대회였다. 당시 대회에는 17개국에서 170여 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2018년에는 터키에서 열린 드론레이싱대회에서 국가대표 김민찬, 강창현, 전제형 선수가 각각 우승과 3위, 6위를 차지했다. 한국드론레이싱협회(KDRA)는 2016년부터 국내 최초로 ‘한국드론 레이싱리그(KDL)’를 운영하고 있다.
해리포터 ‘퀴디치’ 같은 드론축구
공중에서 드론으로 축구 경기를 하는 ‘드론 축구’도 있다. 지름 40㎝·무게 1㎏짜리 ‘드론볼’을 조종해 도넛 모양으로 된 상대 골문(지름 60㎝)에 넣는 스포츠다.공 안에는 드론이 들어가 있다. 경기는 5 대 5로 진행하고, 선수 10명은 각자 하나씩 드론공을 조종한다. 득점은 각 팀에 1명씩 있는 ‘골잡이’만 할 수 있다. 얼핏보면 소설 《해리포터》에 나오는 ‘퀴디치’(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며 하는 스포츠)와 흡사하다.
경기는 3분 3세트로 하고, 3세트 중 2세트를 먼저 가져가는 팀이 승리한다. 축구처럼 오프사이드·페널티킥 룰도 있다. 경기가 무승부로 끝났거나 경기 중 심한 반칙이 발생했을 때는 페널티킥을 한다.
드론 축구는 한국이 종주국이다. 드론 축구에 쓰이는 장비와 규칙 모두 전북 전주에 있는 캠틱종합기술원이 만들었다. 금형·가공·열처리·주조 분야 전문인력 100여 명이 드론볼 소재 등 핵심 기술을 개발했다.
2017년 첫 대회가 열린 뒤 육군참모총장배·공군참모총장배·국토부장관배 등 대회가 전국 각지에서 개최되고 있다. 육군이 지난해 11월 연 드론축구 대회에는 16개 팀, 92명이 참가했다.
현재 대한드론축구협회(KDSA)에 속한 팀은 1500여 팀이다. 이 중 2020년 250여 개이던 일반팀은 지난해 360여 개로 44% 늘었다. 협회에 등록하지 않은 초·중학생들이 주축인 유소년팀은 전국에 3000~4000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협회 관계자는 “드론을 조종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팀을 꾸려 드론 축구에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전주시는 2025년 월드컵드론축구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전주월드컵경기장에 드론축구상설체험장을 만들었다. 이곳에는 대한드론축구협회 사무국, 드론축구 공식 경기장, 드론 시뮬레이션 연습장 등이 갖춰져 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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