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그럴수록 더 우리에게 속삭인다. 네레데? 네레예?(어디서 왔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는가?) 파리의 신문 기자 출신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나는 걷는다》라는 책에서 말한다. 옛 오스만튀르크의 아나톨리아 대륙을 홀로 걷다가 하룻밤 머물다 가는 많은 집에서 주인들은 한결같이 묻는다. “네레데?” “네레예?” 아나톨리아어로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말이다.
프랑스의 리옹에서 터키의 이스탄불을 거쳐 중국의 시안까지 걷는 중이라고 답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저자는 길을 걸으면서 자문한다. 삶의 여정 속에서 과연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혼자 걷고 있는 이 길에서 나는 무엇을 보는가? 이 길은 나에게 무엇인가?
삶의 여정은 신비로운 것이며 정답은 없다. 삶은 예기치 않아 신비롭다. 그리고 삶은 여행이다. 여행의 본질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풍광과 그 풍광을 바라보는 마음에 있다. 삶은 하루가 시작이자 끝이니 오늘 ‘바로 지금 여기서’ 삶을 온전히 살라고도 한다. 또 삶은 그저 살아 내는 것이라고도 한다. 각자의 마음속에 서로 다른 답을 가지고. 무엇을 추구하며 어떻게 살 것인지는 각자가 생각하고 선택하며 그리고 행동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생각하는 대로 존재한다. 그리고 생각하는 대로 길을 간다. 생각과 행동에 따른 결과도 당연히 스스로의 몫이다. 마치 그림자가 물체를 쫓아가듯이.
헤르만 헤세는 말한다. 삶은 어디서나 우리를 기다리고 미래는 어디서나 꽃을 피운다고. 그것이 산티아고의 성스러운 순례길이든 아니면 이름 없는 계곡의 오솔길이든. 어디서나 삶은 이어지고 어디서나 꽃은 핀다. 남송 시대의 시인 육유는 노래한다. 산과 물로 길이 막혀 끊어진 줄 알았더니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버드나무 그늘에 복사꽃 활짝 핀 자그마한 동네가 여기 또 있구나.
살아가면서 물결에 몸을 맡기고 그저 흘러가는 것도 좋다. 멋진 삶이다. 그러나 어디를 향해 가는지를 알면 더욱 좋다. 어디를 향해 가는지 안다는 것은 축복이다. 스스로 좌표가 있으면 거기를 향해 후회 없는 항해를 하면 된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만 알아도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다. 중심을 잃지 않는 팽이가 쓰러지지 않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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