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이나 반복됐던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코로나 대출’에 대한 만기연장 및 상환유예 조치가 한 번 더 연장된다. 코로나 충격이 닥쳤던 지난 2년 새 네 번째 획일적 연장이다. 이번에도 정부 주도로 이뤄졌는데, 당초 ‘2022년 3월 말까지만’이라고 했던 시한을 또 넘기게 됐다. 늘 그렇듯이 이번 일률적 연장 조치도 금융위원회가 나서 은행장을 끌어모은 시중은행장 간담회를 통해 ‘전달’됐다. 앞뒤 사정을 보면, 연초부터 시작되면서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1월 추가경정예산’ 편성 과정에서 나타난 국회의 연장 압박과 당정 협의를 통한 여당의 압력이 금융위원회를 통해 은행으로 전해진 상황이다. 코로나로 인한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이해가 간다. 그런 이유로 문제점이 다분한 획일적 연장은 타당한 것일까.
그렇다면 정부 지원 방식도 이전과 달라야 한다. 비상시에는 비상한 대응이 필요하다. 자영사업자나 중소기업이 다 쓰러진 다음에는 지원도 소용없다. 영세 규모지만 소상공인들이 없으면 경제가 유지될 수 있겠나. 수출기업이 달러를 벌어오고, 거대 공기업이 독점적 사업을 유지하고, 내수 시장이 탄탄한 대기업이 나름의 영업 전략으로 버틴다 해도 경제와 산업의 밑바탕을 이루는 소규모 사업자들과 중소기업이 없으면 장기적으로는 대기업도 유지하기 어렵다. 나라 경제 자체가 밑에서부터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금융 지원을 당분간 더 이어가면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최소한 문은 닫지 않도록 유지하게 돕는 것이 중요하다. 요컨대 다 쓰러진 뒤에 보다 현상을 유지하는 게 현실적인 것이다. 적은 비용으로 큰 손실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번뿐만 아니라 코로나가 어느 정도 숙질 때까지 금융 지원은 이어갈 필요가 있다.
만기 연장이나 이자 감면 같은 금융 지원을 더 해주지 않으면 결국 정부 예산에서 지원해달라는 요구가 또 제기될 것이다. 그런 상황도 대비해야 한다. 가뜩이나 부실한 재정에서 지원에는 한계가 있고, 나라 살림 전반을 우려하는 여론 때문에 실행에는 난관이 많다. 그러니 은행 여력을 빌리자는 것이다. 최근 은행에는 사상 유례없는 이익금이 축적돼 있어 자금 여유도 있다.
만기 연장이든 이자 감면이든 이제는 은행이 책임의식을 갖고 자율 처리해야 할 시기도 됐다. 사업자별 사정에 대한 신용 정보도 거래 은행에 있어 각 은행이 가장 잘 안다. 대출해준 은행이 채권자로서 갖는 권리와 의무 차원에서도 그렇게 가야 한다. 2021년 9월 3차 연장 때 대출 잔액이 204조원으로 파악된 것이 이번에 170조원 규모로 다소 적게 집계되는 것을 보면 코로나 와중에도 상환이나 대환대출, 신규 대출도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좀비 사업자 퇴출 등 구조조정은 필요하고,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코로나 충격에 따른 산업계의 명암을 보면 대출금 관리도 획일적 유예보다는 업종별·사업체별로 달리 접근하는 게 합리적이다. 일률적 만기 연장은 일종의 ‘폭탄 넘기기’일 뿐이다. 부실 대출을 한꺼번에 처리하기보다 각 은행이 알아서 단계별로 정리하면 은행의 막대한 이익 규모를 볼 때 금융 시스템 유지에도 문제가 없다.
썩은 사과가 늘어나는데도 방치하면 어떻게 되겠나. 그렇게 부실을 키우고 시기를 놓치면 부실처리 등 구조조정 비용만 더 덜고 힘들어질 뿐이다. 더 큰 위기가 오기 전에 건전성을 다지는 것은 금융과 산업 양쪽 모두에 필요하다. 임박한 대통령 선거와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한 정부의 결정이라면 더욱 문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