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서도, 예능서도 '짠'…술 부르는 방송 괜찮을까? [이슈+]

입력 2022-03-06 16:39   수정 2022-03-06 16:40


눈이 녹지 않은 태백산을 힘겹게 타고 정상까지 찍은 여자 셋이 하산해서 찾은 것은 바로 막걸리. 영하의 날씨를 말해주듯 볼은 빨갛게 얼었지만 여자는 행복하게 웃으며 말했다.

"등산하고 나면 막걸리 한 잔은 꼭 마셔. 이거 아니면 산을 왜 타."

tvN 예능프로그램 '산꾼도시여자들'의 한 장면이다. 태백산 등산을 마친 후 배우 한선화는 정은지, 이선빈에게 이렇게 말했다. 애주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막걸리를 흔드냐, 안 흔드냐를 두고도 사뭇 진지하다. 막걸리의 맑은 부분만을 따라 맛을 음미하는 모습을 보니 절로 술 한 잔이 생각난다는 반응이다.

이른바 '술방'은 요즘 드라마 및 예능프로그램에서 빠져선 안 될 소재가 됐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경쟁적으로 콘텐츠 시장에 뛰어들면서 새롭고 신선한 소재를 찾으려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술'이라는 소재가 각광받고 있다. 연예인들이 술을 마시는 모습은 친근하고 인간적인 것과 연결돼 흥미를 유발하기도 한다.

MBC '나 혼자 산다'에서도 술 마시는 모습은 단골처럼 등장한다. 홀로 생일은 맞은 이은지는 칵테일을 제조해 만들어 마셨고, 배우 차서원은 감각적인 느낌의 홈바에서 친구들과 음주를 즐겼다. 탁 트인 공간에서 캠핑하는 이장우의 식사에도 술이 빠지지 않았고, 기안84는 여수 여행 도중 숙소에서 홀로 소주를 마셨다. 출연자들이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켤 때면 이를 지켜보는 스튜디오에서는 감탄이 터져나왔다.

이 밖에도 술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예능 '백스피릿', tvN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 등이 모임이 힘든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준다는 평과 함께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잦은 음주 장면이 자칫 과도한 음주를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에 이어 예능 '산꾼도시여자들'까지 시청하고 있다는 30대 여성은 "볼 때마다 흥겨운 분위기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술이 당기더라. 처음에는 같이 즐기는 마음으로 한, 두 잔씩 마셨는데 이제는 건강을 해칠 것 같다는 생각에 의식적으로 자제하게 된다"고 전했다.

최근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미디어 음주장면 노출이 성인 음주 문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국내 학술지인 보건교육건강증진학회지에 게재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 20세 이상 65세 미만 성인남녀 1057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통계분석을 진행한 결과, 미디어 속 음주 장면에 자주 노출될수록 성인의 긍정적 음주 기대(음주가 대인관계, 스트레스 해소 등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에 대한 기대 정도)와 음주 동기(음주를 하게 되는 계기)가 증가하고, 음주문제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발원이 지난해 전체 시청률 상위 10위 드라마 219개(편수 1787회), 전체 시청률 상위 20위 예능프로그램 438개(편수 1739회) 등 총 657개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한 결과, 음주장면은 1편 당 2.3회 송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건강증진사업실 강창범 실장은 "최근 TV보다 상대적으로 표현에 더 자유로운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SNS 등의 채널에서 음주를 주제로 한 콘텐츠가 인기"라면서 "이러한 콘텐츠는 음주를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음란·폭력 장면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우리 모두의 경각심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과음하지 않는게 중요하다"면서 "음주하기 전에 가벼운 식사를 하여 알코홀 흡수 속도를 늦추고, 위벽을 보호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음주를 하면서 물을 자주 많이 마시면 탈수와 숙취를 막는데 도움이 된다고 탄산수나 탄산음료를 마시는 것은 피해야 한다.

강 교수는 "음주를 할 때에는 짜고 매운 안주나 국물은 피하고, 단백질이 풍부한 생선, 회, 살코기와 신선한 채소 안주가 도움이 된다"면서 "취한다고 구토를 하면 역류성식도염이나 식도 손상의 원인이 된다"고 당부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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