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의 위엄' 고진영, 신기록 두 개에 시즌 첫 승 일궜다

입력 2022-03-06 18:13   수정 2022-03-20 00:31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고진영(27)이 올 시즌 출전한 첫 대회에서 우승과 함께 2개의 신기록을 한꺼번에 갈아치웠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사상 첫 15라운드 연속 60대 타수, 30라운드 연속 언더파 신기록이다. 여제의 완벽한 귀환이자, 세계 1위의 진가를 고스란히 보여준 경기였다.

고진영은 6일 싱가포르 센토사GC 탄종코스(파72·6718야드)에서 열린 HSBC 위민스월드챔피언십(총상금 170만달러) 최종라운드에서 버디 7개, 보기 1개로 6타를 줄이며 최종합계 17언더파 271타를 기록했다. 마지막 홀까지 우승 경쟁을 펼친 전인지(28)와 이민지(26·호주)를 2타 차로 따돌리고 짜릿한 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후반부터 특유의 몰아치기
고진영은 이날 3라운드 선두 전인지에게 1타 뒤진 공동 2위로 출발했다. 전날 69타를 쳐 14라운드 연속 60대 타수 타이 기록을 다시 한번 세운 상태. 신기록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경기 초반에는 다소 답답한 플레이가 이어졌다. 날카로운 아이언샷으로 몇 차례 버디 기회를 만들었지만 퍼트가 살짝 비껴 나가면서 파세이브가 이어졌다. 그사이 이정은이 3타, 아타야 티띠꾼(19·태국)이 4타를 줄이고 선두로 치고 나가면서 한때 공동 5위까지 처졌다.

고진영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8번홀(파5)과 9번홀(파4)에서 연달아 버디를 잡고 상승세의 발판을 마련했다. 12번홀(파4) 보기로 주춤하는 듯했지만 특유의 뒷심이 불붙기 시작했다. 13번홀(파5)부터 16번홀(파5)까지 4개 홀 내리 버디를 잡아내며 탱크처럼 선두로 밀고 올라갔다. 특히 15번홀(파3)에서는 그린 밖 15m에서 보낸 버디퍼트를 성공시키는 집중력을 선보였다.
승부사 면모 빛났던 18번홀
승부는 마지막 18번홀(파4)에서 갈렸다. 그린 주변을 여러 개의 벙커가 둘러싸고 있는 까다로운 홀. 고진영과 이정은이 16언더파로 공동 1위, 전인지가 15언더파로 추격하며 마지막홀을 시작했다. 이정은은 티샷을 놓친 데 이어 두 번째 샷은 벙커로, 세 번째 샷은 프린지의 깊은 러프에 빠뜨리는 실책을 범해 공동 4위로 떨어졌다.

반면 고진영은 송곳처럼 날 선 플레이를 펼쳤다. 티샷을 정확하게 페어웨이에 올린 데 이어 8번 아이언으로 두 번째 샷을 홀에서 1.5m 거리에 떨궜다. 완벽한 버디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침착하게 버디퍼트를 성공시키고 나서야 고진영은 내내 굳어 있던 얼굴을 풀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고진영은 이날 우승 확정과 함께 ‘전설’ 안니카 소렌스탐(52·스웨덴)을 넘어섰다. 지난해 10월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2라운드부터 15라운드 연속 60대 타수를 작성하며 소렌스탐과 자신이 갖고 있던 최다 기록을 경신한 것. 또한 연속 언더파 부문에서도 30라운드로 소렌스탐(2004년), 리디아 고(25·뉴질랜드·2015년)의 기존 최다 기록을 넘어섰다.

올 시즌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고진영은 LPGA 투어 통산 13승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시즌 최종전 CME 그룹 투어 챔피언십 우승에 이어 2연승을 거두며 최근 출전한 10개 대회에서 여섯 차례 우승하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증명했다. 이번 대회에 불참한 세계 랭킹 2위 넬리 코다(미국)와 격차가 0.08점 차에 불과했지만 이번 우승으로 격차가 더 벌어질 전망이다.

고진영은 신기록을 깨고 싶어 부담감이 컸다고 털어놨다. 그는 “15라운드 연속 60대 타수를 기록한 게 자랑스럽고 너무 행복하다”며 “지난해 부산에서 기회가 있었는데 긴장도 했고 여러 상황이 받쳐주지 않아 아쉬웠다. 오늘도 그런 압박감 속에서 경기했지만 내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 기쁘다”고 말했다.

고진영은 2주 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리는 JTBC클래식에 출격한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어떤 게 부족한지 스스로 잘 알았으니 한국에 돌아가서 열심히 연습할 생각이다. 골프를 좀 쉽게 치면 좋겠다”며 웃었다.
한국 여자골프 ‘부활’ 신호탄
이날 최종라운드는 한국 여자골프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한 자리였다. 지난 시즌 코다의 우승몰이에다 태국 선수들의 선전으로 한국 선수들의 우승이 줄어들면서 일각에서는 ‘한국 여자골프 위기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한국 선수들의 저력이 곳곳에서 증명됐다. 최종라운드 챔피언조는 고진영, 전인지, 이정은 등 한국 선수로만 구성됐다. 여기에 양희영(33)과 김아림(27)이 각각 공동 6위와 공동 9위에 오르며 톱10에만 5명의 한국 선수가 포함됐다.

호주 동포 이민지는 이날 하루에만 버디 11개를 몰아치며 9타를 줄여 전인지와 공동 2위로 경기를 마쳤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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