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설립된 세종문화회관은 한국 공연예술계를 대표하는 극장이다. 하지만 장소를 빌려주는 대관(貸館) 중심으로 공연장을 운영하느라 서울시 국악관현악단·무용단·합창단·뮤지컬단·극단·오페라단 등 산하 6개 예술단을 적극 활용하지 못했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이런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대대적인 변화를 선언했다. 산하 예술단들이 자체 제작하는 공연을 대폭 늘려 제작극장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7일 만난 안 사장에게 변화를 위한 구체적 계획을 들었다.
“세종문화회관과 지방 공공극장 대부분은 전속 예술단체를 갖고 있고 여기에 많은 예산을 썼지만 제대로 된 운영 모델을 찾지 못했습니다. 문화예산의 70~80%가 공공 부문에 사용되고 있는데도 많은 공공극장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거죠. 문제 해결의 핵심은 극장과 예술단의 연결을 강화하는 겁니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안 사장은 대표적인 예술경영 전문가로 꼽힌다. 예술의전당 예술사업국장, 서울문화재단 대표, 국립중앙극장장 등을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2017년부터는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장을 지냈다. 그가 다시 극장으로 돌아온 이유는 뭘까.
“저는 평생 극장에서 일한 사람이라 어떤 극장을 보든 호기심이 생깁니다. 이번 기회에 세종문화회관을 맡아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세종문화회관은 지방 공공극장과 문화예술회관의 롤모델이거든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한다는 점을 비롯해 조직과 사업 방식 등도 비슷해 세종문화회관의 사업들을 많이 참고합니다.”
그는 세종문화회관 혁신을 위해 무엇보다 예술단의 역할을 강조했다. “예술단은 좋은 작품으로 매일 밤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는 게 최선입니다. 런던 로열오페라나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는 오프 시즌인 여름을 제외하고 1년 내내 오페라를 무대에 올립니다. 다양한 레퍼토리를 활용해 매일 공연을 바꾸죠. 당장 그 정도까지 해내기는 어려워도 서울시 예술단체들의 역할을 강화해 나간다면 다른 지방 공공극장들도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될 겁니다.”
안 사장은 국악, 합창 등 비인기 공연 장르도 대폭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인지도가 낮은 장르와 작품을 무대에 올리다 보면 관람료 수입이 줄어 재정자립도가 악화할 수 있다. 지난해 세종문화회관의 재정자립도는 20% 수준.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3~4년 전(30~40%)보다 대폭 줄었다.
“재원을 다변화해서 재정자립도를 다시 30~35%까지 높일 방침입니다. 공간 임대 사업을 개편하는 등 새로운 수익사업을 발굴할 겁니다. 후원회도 장르와 예술단별로 세분화할 예정이고요.”
안 사장은 2020년 열린 미국 힙합 뮤지션 트래비스 스콧의 메타버스 공연을 눈여겨봤다고 했다. 스콧은 게임 ‘포트나이트’ 속 공간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직접 아바타로 변신해 공연을 진행했고, 팬들도 아바타 모습으로 공연을 즐겼다. “관객은 점점 개인화하고 있고 컴퓨터로 불특정 다수가 접속하는 ‘다중접속’ 시대도 열린 것 같아요. 그걸 보며 21세기형 새로운 공연 양식은 뭘까 생각했죠.”
그래서 개발하기로 한 것이 핵심 관객을 집중 공략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기성세대와 달리 자기 판단과 기준을 믿으며 새로운 예술작품과 문화 현상에 관심을 갖는 관객이 많아졌다”고 진단했다. 오는 6~9월 선보이는 ‘싱크 넥스트 22(Sync Next 22)’도 코어 관객을 겨냥한 것이다. 다양한 아이디어와 기술 등을 결합해 아티스트들과 함께 과감하고 혁신적인 작품을 개발하는 이 프로그램에는 무용가 안은미, 밴드 이날치 등이 참여한다. “국내 관객들 가운데는 적극적이고 활발한 분들이 많은데도 그런 분들이 세종문화회관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적었어요. 앞으로는 다양한 예술가와의 협업을 통해 참신한 작품을 선보이고 코어 관객 공략에 나설 겁니다.”
김희경/오현우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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