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통령이 맞닥뜨릴 첫 폭탄, 고삐 풀린 물가 [홍영식의 정치판]

입력 2022-03-07 08:35   수정 2022-03-07 13:38


정부는 2020년 12월 전기 요금 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석유·액화천연가스(LNG)·석탄 등 발전 연료비 증가분을 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연료비가 오르면 자동으로 요금에 반영하는 제도다. 전기 요금의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였다. 이 제도에 따라 전기료는 직전 3개월간 에너지 평균 가격에서 과거 1년간의 평균 가격을 뺀 뒤 그 편차에 비례해 전기료를 분기마다 올리거나 내리게 된다. 이듬해인 2021년부터 이 제도가 실시됐다. 다만 전기료 인상과 인하 폭을 전년 대비 ㎾h당 5원 수준으로 제한했다. 전 분기 대비로는 ㎾h당 3원까지만 올리거나 내릴 수 있도록 했다. 한국전력과 소비자에게 급등락에 따른 요금을 한몫에 큰 부담을 지우지 말자는 이유였다.

하지만 지난 1년간 이 제도는 유명무실화됐다. 정부는 연료비가 올랐음에도 지난해 2~3분기 요금 인상을 틀어막았다. 지난해 4분기엔 kWh당 3원 ‘찔끔’ 올렸지만 1분기 3원 내린 것을 감안하면 연간으론 동결이다. 올해 1분기에도 묶었다. 정부는 물가 안정이 우선이라고 했다.

이 방안을 발표한 정부는 불과 1주일 뒤 올해 전기료와 가스료 인상 스케줄을 발표했다. 전기 요금은 대선 다음 달인 4월과 10월 두차례, 가스 요금은 5월과 7월, 10월 나눠 올리기로 한 것이다. 올해 4분기가 되면 전기료는 10.6%(4인 가족 월평균 3587원), 가스 요금은 16.2%(4600원) 급등하게 된다.

대선 뒤 전기·가스·철도·상하수도료 인상 ‘폭탄’
1년간 억눌러 놓았던 요금을 대선 뒤 올리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인한 국민 부담을 고려해 그렇게 정했다고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표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뒤로 미룬 대선용이다. 국민 부담을 감안했다면 조금씩 나눠 올리는 게 바람직한 데도 지난해와 올해 1분기 상승분을 2분기 이후로 몰아 올리다 보니 국민만 요금 폭탄을 안게 됐다. 전형적인 ‘조삼모사(朝三暮四)’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설상가상인 것은 올해부터 한전 산하 5개 발전 공기업을 비롯해 500MW 이상 대형 발전사들에 적용되는 신재생에너지 의무 발전 비율(RPS)이 지난해 9%에서 12.5%로 높아진다는 점이다. 원전이라는 값싼 에너지원(전력 1㎾h당 54원) 대신 값비싼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245원) 발전 비율을 높이는 만큼 전기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발전사들이 RPS를 맞추지 못하면 재생에너지 사업자들로부터 신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REC)를 사 비율을 채워야 한다. 이 역시 전기료 인상 요인이다. 대선이 끝나면 이래저래 국민 부담만 크게 늘게 된 것이다.

한전의 경영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어 전기료 급등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한전의 지난해 영업손실은 5조8601억원에 달했다. 금융 위기로 국제 유가가 급등할 때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했던 2008년의 2조7981억원보다 2배가 넘는다. 2020년 4조863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3년 만에 흑자로 돌아선 지 1년 만에 다시 적자의 늪에 빠진 것이다. 올해는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전의 부채 규모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 첫해 109조원에서 매년 늘어 2021년 146조원으로 급증했다. 매년 이자 비용으로만 2조원이 나가는 상황이다.

한전과 발전 자회사들의 경영이 악화한 것은 물론 연료비 상승이 큰 원인이다. 2021년 한전 발전 자회사들의 연료비는 전해보다 4조6136억원 늘었고 민간 발전사의 전력 구입비는 5조9069억원 증가했다. 하지만 이런 비용을 전기료에 반영하지 못하니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도 한전 적자에 한몫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원전은 안전하지도, 저렴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며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 폐기를 선언했다. 신규 원전 6기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고 고리 1호기 등 원전 14기 수명 연장을 중단하는 조치들이 나왔다. 신한울 1·2호기, 신고리 5호기 가동이 늦춰졌고 7900억원이 투입된 신한울 3·4호기는 건설이 중단됐다.

월성 원전1호기는 경제성 평가 데이터를 조작해 가동을 중단시켰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이로 인해 보통 80~90%였던 평균 원전 이용률은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71.5%로 낮아졌다. 여당은 문 대통령 임기 중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료가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지켜지지 않게 됐다.

문 대통령은 급기야 2월 25일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현안 점검 회의’에서 “원전이 향후 60여 년 동안 주력 기저 전원으로 충분히 활용돼야 한다”고 했다. 건설이 중단되거나 지연된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를 빨리 가동할 수 있게 서둘러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는 ‘탈원전 정책 선회’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명분상 그럴 뿐 실질적으로는 정책 전환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대내외 환경이 전기료뿐만 아니라 공산품·생필품 등 물가 인상을 자극하는 악재 요인이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이미 물가 상승률은 2021년 10월 이후 4개월 연속 3.0%대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작년 8월부터 세 차례나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물가 상승을 잡지 못하고 있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우선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초팽창적 재정 정책에 더해 연이은 추경은 불난 데 기름 붓는 격이다. 추경은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 7차례에 걸쳐 총 123조원 정도 편성됐다. 이에 따라 지난 2년간 한국의 재정 적자는 100조원에 달했다. 글로벌 공급망 파동으로 원자재 값 급등도 물가 상승을 부채질했다.

더 큰 우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정쟁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3.1%로 전망했다. 한국은행의 3.0%대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2012년 4월 이후 10년 만에 나온 것이다. 2021년 말 내놓은 전망치(2.0%)에서 3개월 만에 1.1%포인트 높인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땐 디플레이션 우려도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더 오를지 예측할 수 없다는 데 심각성을 더한다. 설령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협상에서 진전을 보더라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동유럽 안보 지형 재편에 나서고 있는 마당이어서 이 지역의 불안정성은 이어질 수도 있다. 러시아는 세계 원유의 12%, 천연가스의 25%를 생산하고 우크라이나는 주요 곡물 수출국이다. 원유과 곡물 값이 지속적으로 오르면서 한국 경제를 위협할 수 있다.

예컨대 옥수수 값이 오르면 사료 값 상승으로 이어져 한우 값을 밀어 올릴 수 있다. 러시아산 니켈 값 상승은 배터리 값과 전기차 값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다. 이는 자산 시장 붕괴와 기업 실적 악화로 연결될 수 있다. 정부가 가격 인상을 미뤄 놓은 고속도로 통행료, 철도 요금, 상하수도 요금도 2분기 이후 줄줄이 가격 폭탄으로 다가올 예정이다.

새 대통령이 맞닥뜨릴 첫째 과제는 이렇게 물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외 요인이 뒤섞여 있어 난제다. 인플레이션에 소비 부진 등으로 인한 디플레이션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선 과정에서 수백조원에 이르는 온갖 퍼주기 공약을 내놓은 것은 새 대통령을 극한 직업으로 몰고 가는 데 크게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 수조원, 수십조원이 소요되는 공약이 수두룩한데 예산의 효율적인 집행 등 한 줄짜리 원론적인 재원 대책만 내놓았다. 고물가 위협 속에 이런 식의 퍼주기 공약은 새 대통령에게 ‘자승자박’이 될 가능성이 높다.

홍영식 논설위원 겸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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