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 사회에 큰 울림을 줬던 한국계 미국인 뮤지션 미셸 자우너(33·사진)의 에세이 《H마트에서 울다》(문학동네)가 번역돼 나왔다. 자우너는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한인 마트인 H마트에서 2014년 암으로 세상을 뜬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한다.
미국 인디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자우너는 1989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 살 때 미국 오리건주 유진으로 이주했다. 엄마는 여느 미국 엄마와 달랐다. 옷차림이나 공부에 사사건건 잔소리를 했다. 울면 위로해 주기는커녕 “울긴 왜 울어? 네 엄마가 죽은 것도 아닌데”라며 다그쳤다. 그런 엄하고 매정한 말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랬던 엄마는 자우너가 스물다섯일 때 영영 떠났다. 이후 그는 장을 보러 간 H마트에서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깨닫는다. 생일날 먹던 미역국, 테라스에서 뜨거운 철판 위에 굽던 삼겹살, 김치와 장조림 등 각종 반찬에 엄마의 사랑이 담겨 있었다. “음식은 엄마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내 입맛에 꼭 맞춰 점심 도시락을 싸주거나 밥상을 차려 줄 때만큼은 엄마가 나를 얼마나 끔찍이 여기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H마트는 작은 한국이다. 한국과 인연을 가진 사람이 모여든다. 미군 혹은 영어 강사로 한국에 살았던 것처럼 보이는 젊은 백인 남성이 가족을 데리고 와 푸드코트에서 한국 음식을 먹는다. 여자 친구에게 새로운 맛과 식감의 세계를 소개하려는 한국계 남자도 있다. 물냉면에 식초와 매운 겨자를 넣으면 더 맛있다고 알려주고, 자신의 부모님이 어떻게 이 나라에 오게 됐는지 얘기한다.
자우너는 이들을 보면서 각자 어떤 사연을 갖고 H마트에 왔을지 상상해본다. 엄마와 이모를 모두 암으로 잃은 그는 H마트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한다. “내가 H마트에 가는 것은 갑오징어나 세 단에 1달러짜리 파를 사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두 분에 대한 추억을 찾으려고 가는 것이기도 하다. 두 분이 돌아가셨어도, 내 정체성의 절반인 한국인이 죽어버린 건 아니라는 증거를 찾으려는 것이다.”
이 책은 지난해 5월 미국에서 출간된 후 큰 주목을 받았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추천하기도 했다. 미국 영화사 MGM의 오라이언 픽처스가 영화로 제작 중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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