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에는 서울에 ‘영동(永東)’이라는 지명이 있기 때문으로 생각했었다. 후일 알고 보니 ‘영동’이란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의미였다. 영등포에서 잠실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변변한 이름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라웠다. 학창 시절 팔도 지명의 유래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경상도(慶尙道)는 경주(慶州)와 상주(尙州), 전라도(全羅道)는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앞 글자로 만들어졌다고 배우면서 오늘날의 평범한 지방 도시들이 지난날에는 권역의 중심지였다는 시간의 흐름이 느껴졌다.
땅 자체는 자연적 산물이지만 사람들과 결부되면서 삶의 공간이 되고 이름이 붙는다. 자원을 투입해 땅에 도로가 만들어지고 강에 다리가 놓이면서 가치가 생겨난다. 또한 시간이 흐르고 삶의 방식이 변하면서 공간의 성격이 달라지고 근거지도 이동한다. 수백 년 전 중심지였던 상주, 나주 등에서 살던 사람들이 터전을 옮긴 것은 애향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삶을 위한 사회경제적 선택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1960년대까지 영동으로 통칭되던 변두리가 현재의 서울 강남권역으로 부상한 배경도 산업화 진전에 따른 도시 확장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자연물인 땅의 공급은 일정 수준에서 제한되는 반면 토지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는 자산이다. 이런 토지의 공급을 결정하는 요인은 기술 발달과 정부 정책이다. 건축 기술이 단층집에서 고층빌딩으로 발전하면 토지의 가치는 완전히 달라진다. 터널을 뚫고 다리를 놓는 토목 기술도 마찬가지다. 또한 토지 공급에서 기술은 장기적 간접적 요인이지만 정부 정책은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요인이다. 땅에 인프라 투자를 결정하고 지목과 용도를 변경하는 정부 정책은 순식간에 가치를 변화시킨다. 인접한 토지라도 그린벨트, 주거지역, 상업지역 등 용도와 건축 관련 건폐율, 용적률 등의 규제에 따라 시세는 천차만별이다.
토지 공급자는 정부다. 용도 지정과 건축 규제에 기반한 정부 정책에 따라 건축물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나아가 아무리 건축과 토목 기술이 발달해도 정부 규제의 범위에서만 토지를 활용하기에 정부는 독점적인 공급자에 해당한다. 시장경제에서 독점적 공급자는 언제든 수요자를 지배하고 해악을 끼치는 잠재적 위험이 있다. 하지만 부동산 개발에서 정부의 독점적 권한을 인정하는 이유는 장기적인 국토 개발의 관점에서 전문적이고 중립적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운영하리라 전제하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5년간 국정을 운영한 현 정부의 최대 실패작으로 지목되는 부동산 정책은 독점적 공급자의 방종과 무책임에 기인한다. 핵심은 도덕과 현실의 혼돈이다. 개개인이 각자의 사회경제적 동기에서 선택하는 부동산 소유에 엉뚱하게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명분을 내세운 정책을 실행했기 때문이다. 약자인 착한 무주택자는 지원하고 강자인 악한 유주택자는 응징한다는 현실과는 괴리된 억강부약(抑强扶弱)의 단순 논리로 종부세, 임대차 3법 등 관련한 세금 제도를 무리하게 밀어붙여 혼란만 가중시켰다.
도덕과 현실의 혼동은 비단 부동산 분야만이 아니라 기업 관련 정책 전반에 만연했다. 연초에 시행된 이후에도 논란이 지속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대표적 사례다.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를 징역이나 벌금형으로 처벌한다. 복잡다단한 사고 발생 구조를 도외시하고 최고위급 책임자의 처벌 수위만 높이면 사고가 감소하리라는 비현실적 도덕론에 입각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도덕론을 앞세운 무능한 성리학자의 조선시대로 퇴행한다”는 세간의 탄식이 경제산업 관련 정책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차기 정부가 최우선으로 성찰할 과제는 추상적 도덕론을 탈피해 구체적 현실을 직시하고 대처하려는 기본자세의 정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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