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재정적자·인플레 숙제 떠안은 새 대통령

입력 2022-03-09 21:04   수정 2022-03-10 04:38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삼일절 기념사에서 현재 우리나라를 세계 10위 경제대국, 글로벌 수출 7위 무역 강국, 종합군사력 세계 6위의 당당한 나라로 정의했다. 문재인 정부가 이런 우리나라의 위상에 공헌한 성과를 자부할 수 있겠지만, 차기 정부가 감당할 과제도 분명히 남아 있다. 문 대통령 스스로 사과한 부동산 정책, 미완으로 남은 분열과 갈등의 종식, 그리고 역대 최악의 재정적자다.

지난달 28일 기획재정부는 16조9000억원의 올해 1차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해 70조8000억원의 재정적자를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6조9000억~18조8000억원, 금융위기 때 17조6000억원의 재정적자를 경험했지만, 그 외에는 흑자를 유지하던 재정수지가 2019년 이후 연속 적자로, 지난해 61조4000억원의 세수 오차에도 불구하고 4년간 총 184조원의 누적 적자가 예상된다. 차기 정부는 사상 최대 재정적자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외환위기나 금융위기와 또 다른 상황이기에 재정적자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문제는 여야 대선 후보들이 대선 이후 추가 지출을 앞다퉈 공약했다는 데 있다. 이에 다른 정부 지출을 조정하더라도 올해 재정적자를 100조원 이상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대선 후보 토론에서 논란이 된 기축통화라는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적자는 빚을 지게 하고 망하지 않으려면 당연히 빚을 갚을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의 빚은 소득세와 법인세 등 세수로 갚는데, 세수를 예산대로 거두려면 경제성장도 예상대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대선 이후 우리나라 경제 상황은 만만치 않다. 지난달 가스는 전년 대비 3배, 석탄 1.8배, 유가는 55% 급등해 에너지 가격 불안이 매우 위협적이다. 원자재 수입 물가 상승까지 계속된다면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의 ‘쌍둥이 적자’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국내 물가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다. 더욱이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국내 물가 상승에 직격탄인 유가 폭등을 피할 수 없다. 실제로 한국은행은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 사태 속에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3.1%로 상향 조정했는데, 한은이 당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3% 수준으로 전망한 것은 10년 만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 이후 사상 최대 재정적자에 기반한 통화량 증가는 소비자물가를 4% 이상까지 상승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결국, 한은이 예측한 3.0% 경제성장을 달성하더라도 더 높은 물가 상승으로 “내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지금의 한탄이 대선 이후 곡소리가 될 수 있다. 인플레이션에 더해 미국 금리 인상 여파로 국내 금리까지 오르면 1862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로 인해 개인은 물론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던 기업들의 지속 가능성까지 위협할 것이다. 그런 기업들이 상장기업 중에도 36%나 된다.

이런 상황을 모를 수 없는 정부도 5년 만에 장관급 물가대책회의를 열었지만 피해갈 묘수를 찾지 못한 것 같다. 지금 상황은 재정당국은 물론 금융당국의 준비가 절실하다. 가령, 한계기업에 대한 사전 식별과 지원 및 구조조정 그리고 개인이나 기업 파산이 금융회사에 미칠 파급의 예방적 노력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대통령 당선인이 “한국의 국가채무가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는 무디스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경고를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준다”는 복지 포퓰리즘이 낳은 그리스의 재정파탄을 반면교사로 삼아, 적자를 가속화할 공약 이행에 앞서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대응에 집중해야 한다. 선거 전엔 선거보조금, 선거 후엔 선거보전금을 받아 선거 재테크를 할 수 있는 선거판과 달리,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 및 금리 인상은 온전히 우리 국민과 기업이 감당할 몫이다. 대선 이후 우리 경제를 책임질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올바른 선택이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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