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정치 데뷔 8개월 만에 제20대 대통령이 되기까지 놀라운 관운이 주목받고 있다.
다선 의원들을 제치고 국민의힘 경선 승리를 거머쥔 윤석열 후보가 처음이자 마지막 출마한 것이 대통령 선거였다.
윤 당선인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놓은 사건은 2013년 박근혜 정부 첫해 국정원 댓글 사건의 수사팀장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채동욱 총장 때인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아 일하던 중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구속해야 한다며 청와대와 맞서다 검찰 수뇌부를 비롯해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과 마찰을 빚었고, 결국 업무에서 배제됐다.
당시 여주지청장이던 윤 당선인은 이틀 뒤 국정감사장에서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 ‘야당 도와줄 일 있나, 야당이 이걸 가지고 정치적으로 얼마나 이용하겠냐’라고 말했다”라며 정권과 검찰 상부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그가 내뱉은 이 한마디는 그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정치권에 환멸을 느끼던 국민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검사 윤석열'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각인됐다.
윤 당선인은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에서 대구고검 평검사로 좌천됐다. 주변인들은 좌천당한 상황에서도 모든 모임에 참석해 뒷줄에서 사진을 찍고 일거리를 붙잡고 야근하는 모습에 감명받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3년이 채 되지 않아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국정농단 사태를 특검으로 수사하라는 국민의 압력이 거세졌다. 박영수 특검이 시작됐고 윤 당선인은 수사팀장으로 합류했다.
윤 당선인은 삼성 수사를 맡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뇌물죄로 구속기소 했다. 박근혜·최순실·이재용 모두 구속 수감되면서 그는 ‘국민 검사’라는 호칭까지 얻었다.
윤 당선인은 고검 검사에서 서울중앙지검장에 발탁된 유일한 사례로 꼽힌다.
2017년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윤 당선인을 검찰 수사의 핵심 조직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했다.
윤 당선인은 임명된 즉시 과거 자신을 좌천시킨 ‘국정원 댓글 사건’을 파헤쳤다. 전 정권에서 수사를 방해했던 검사들과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을 구속기소 했다. MB의 최측근 비서관까지 수사한 끝에 이명박 전 대통령도 구속기소 했다.
검사장 승진 후 보직은 서울중앙지검장이 유일하다. 이후 바로 검찰총장이 됐기 때문이다.
2019년 7월 문 대통령은 윤 당선인을 차기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다. 전임 총장에서 무려 다섯 기수를 뛰어넘은 파격 인사였다.
문재인 정부는 윤 당선인이 ‘검찰 개혁’의 주역이 돼주기를 기대했다. 하나의 축은 윤 당선인이었고, 또 하나의 측은한 달 뒤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되는 조국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문 대통령의 기대와 완전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윤 당선인이 총장 취임 뒤 휴가를 간 동안, 딸의 입시 비리 의혹 등 조국 법무부 장관 관련 비리 의혹이 터져 나왔다. 윤 당선인은 이후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이 수사를 할지 말지에 대해 저도 인간이라서 번민했다”고 말했다. 결국 ‘전격 수사’ 모드에 돌입한 윤 당선인은 조국 전 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동시다발적 압수수색을 벌였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2부(부장검사 고형곤)는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서울대, 고려대, 코링크PE, 학교법인 웅동학원 등에 대한 동시다발적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조국 인사청문회 막바지인 오후 10시 50분 검찰이 동양대 총장 표창장을 위조했다는 혐의(사문서위조)로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재판에 넘겨 정치권엔 큰 파장이 일었다.
자녀 입시 비리와 사모펀드 투자 관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경심 교수에게 법원은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이 과정에서 조국 수사에 대한 국민 여론은 극명히 나뉘었다. 서초동과 광화문에는 조국 수호와 조국 반대 시위가 연일 벌어졌고 이런 상황에서도 윤 당선인은 유재수 전 부산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송철호 울산시장 관련 선거 개입 의혹,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등 정권 핵심 인사에 대한 수사를 밀어붙였다. 이러다 보니 청와대가 임명한 검찰총장을 여당이 비난하고 야당이 옹호하는 웃지 못할 광경도 연출됐다.
조국이 물러나고 임명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강경하게 윤 당선인을 몰아붙였다. 검찰 인사를 단행해 검찰 내 윤 당선인 사단을 좌천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압도적 신임을 받으며 검찰총장이 된 지 2년도 지나지 않아 역적으로 몰리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그 ‘반작용’으로 단숨에 차기 대권 주자에 이름을 올렸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인 '검찰개혁'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문재인 정부가 자력으로 유일하게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권력기관 개혁은 조국으로 실패했는데 3년간 인정하지 않다가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는 것.
윤 당선인은 지난해 3월 “상식과 정의가 무너지는 걸 더는 지켜보기 어렵다”며 검찰총장직을 사퇴했다. 6월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고 한 달 뒤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그리고 4개월 만에 야당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또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9일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윤 당선인이 사법시험 합격까지 9수를 했다는 사연은 유명하다. 하지만 대전고검 검사에서 대통령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5년에 불과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이날 오전 최종 득표율 48.56%(1639만여 표)를 기록해 당선을 확정 지었다. 경쟁 상대였던 이 후보는 47.83%(1614만여 표)를 얻었다. 득표율 차이는 단 0.73%포인트, 24만7000여 표에 불과하다.
윤 당선인을 파격 등용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그에게 전화를 걸어 대선 승리를 축하하고 정권 인수인계를 위한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관례에 따라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도 내주쯤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170여석의 거대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다시 야당의 길을 걷게 됐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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