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블 폭락에 규제 압박까지…러시아서 몸 사리는 中 스마트폰 기업들

입력 2022-03-10 14:58   수정 2022-03-10 15:06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후 중국 스마트폰 기업들이 러시아로 향하는 제품 출하량을 줄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애플 등 서방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철수한 뒤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루블화가 폭락한 데다 경제 제재가 여파가 번질 것을 우려해 몸을 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화웨이 샤오미 오포 등의 출하량이 우크라이나 전쟁 후 최소 절반으로 줄었다고 10일 보도했다. 샤오미의 한 전직 임직원은 "애플이나 삼성처럼 러시아 시장 철수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클 것"이라면서도 "사업적 관점에서 볼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당분간 지켜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했다.

샤오미는 지난해 4분기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31%를 기록하며 매출 1위를 차지했다. 삼성(27%)과 애플(11%)이 뒤를 이었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 리얼미(8%)과 아너(7%)도 러시아 시장 점유율이 높았다. 이들을 포함하면 중국 기업의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60%에 육박했다.

중국과 러시아 간 교역규모는 지난해 1460억달러로 역대 최대였다. 러시아 수입품 중 중국산은 14%로 대부분은 전자기기다. 러시아 경제제재가 시작되면 중국 기업들이 큰 수혜를 입을 것이란 분석이 주를 이뤘던 이유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과 다소 달랐다. 달러 대비 루블 가치가 35% 넘게 폭락하면서 러시아에 진출한 중국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했다. 떨어진 화폐 가치에 맞추려면 제품 가격을 크게 올려야 하지만 현지 경제 상황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어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컨설팅그룹 카운터포인트연구소의 이반 람 애널리스트는 "손실을 피하기 위해선 매일 새 가격표를 붙여야 한다"고 했다.

루블 대신 중국 위안화를 기업 간 거래에 활용하는 것도 쉽지 않다. 중국은행의 모스크바 지점마다 신규 계좌 개설을 원하는 사람이 몰려 업무가 마비됐기 때문이다.

전자기기 등이 러시아로 공급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 정부가 중국 기업에 추가 제재를 가할 위험도 남았다. 중국 스마트폰에 들어있는 미국산 부품이 러시아로 흘러가는 것까지 문제 삼으면 중국 기업은 불법 기업으로 전락하게 된다. 경제제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업 범위는 크게 달라진다.

러시아에 있는 무역업체들은 환율 리스크 탓에 중국 스마트폰의 신규 주문을 중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벨라루스 언론들은 세계 최대 컴퓨터제조 기업인 홍콩 레노버가 러시아 판매를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기업들이 시장 불확실성에 대응해 러시아 사업 규모를 축소하고 있지만 철수 선언엔 나서지 않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다. 러시아 시장을 지키겠다고 선언한 기업도 많다. 중국 완성차 기업인 장성자동차, 지리 등은 러시아 판매를 중단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중국 의료장비업체인 우한 존케어 바이오메디컬 일렉트로닉스의 한 임원은 "대다수 러시아 은행에 위안화 보유량이 충분치 않아 많은 러시아 고객이 주문을 취소했다"면서도 "러시아 시장 잠재력이 큰데다 전쟁이 끝난 뒤엔 중국 제품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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