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한 사람의 인생을 담은 책

입력 2022-03-10 18:02   수정 2022-03-11 00:48

한 사람의 일생을 담은 전기(傳記)는 서구 출판계에선 주요 분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서점에는 각종 평전과 자서전, 회고록 등을 모아놓은 코너가 눈에 띄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아동용 위인전기를 제외하면 한 사람의 일생을 오롯이 담아내는 전기류는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게 현실이다. 700~900여 쪽의 방대한 분량에 인물의 일대기를 충실하게 담은 두 권의 책이 반가운 것은 이런 까닭이다.

《에릭 홉스봄 평전》(리처드 J 에번스 지음, 박원용·이재만 옮김, 책과함께)은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등 19세기 3부작과 ‘단기 20세기론’을 토대로 한 《극단의 시대》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유명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삶을 촘촘하게 재구성한 책이다. 저자 리처드 에번스는 《제3제국의 도래》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19~20세기 유럽사 분야 대가다. 비유해 보자면 마라도나가 쓴 ‘펠레 평전’, 선동열이 쓴 ‘최동원 평전’쯤 될 법하다.

2012년 95세로 생을 마친 홉스봄은 가장 유명한 20세기 역사학자였다. 그는 70년 가까이 학계에서 최고 수준의 활동을 했고, 초판이 나온 지 50년이 넘은 저서부터 2010년대에 나온 최신작까지 꾸준히 각국 지식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1950년대에 불을 붙인 ‘17세기 위기론’ 논쟁부터 ‘만들어진 전통’ ‘원초적 반란자’ 같은 담론은 현대 역사학의 시야를 획기적으로 넓혔다.

홉스봄은 책상 위에만 머물지 않은 학자였다. 그는 독일에서의 파시즘 대두와 유럽을 휩쓴 제2차 세계대전, 냉전의 심화와 붕괴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다. 혁명기 쿠바를 방문해 체 게바라의 통역을 맡는 등 실제 역사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기도 했다.

1급 역사학자였던 홉스봄은 자신의 이력을 정리한 자서전 《흥미로운 시대》를 선보인 바 있다. 그가 직접 삶을 상세하게 담은 책이 있는데도 제삼자인 역사학자가 다른 시선에서 그의 삶을 재구성한 것은 위대한 역사학자의 여정에 20세기의 여러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삶이라는 렌즈를 통해 현대인들의 모습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조소앙 평전》(김인식 지음, 민음사)은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한 저자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요 인사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해방정국에서 민족진영 정치세력을 결성하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했던 정치인 조소앙의 삶을 복기한 책이다. 방대한 1차 자료를 검증해 조소앙의 생애를 세밀하게 복원했다.

조소앙은 개인·민족·국가 간 균등과 정치·경제·교육 균등을 통해 이상사회를 건설하자는 삼균주의(三均主義)를 정립해 민족운동의 정신적 기틀을 놨다. 임시정부에서 외교와 정책 실무를 책임지기도 했다. 이승만, 김구 등과 함께 독립운동사와 현대 한국 정치에서 큰 역할을 맡았지만 6·25전쟁 당시 납북돼 정치 무대에서 강제로 사라졌다. 그의 삶과 사상에 대한 평가는 오랫동안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의 삶을 다룬 평전다운 평전이 없었던 이유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상세한 조사와 꼼꼼한 정리 덕에 잊혔던 독립운동가의 삶이 복원됐을 뿐 아니라 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운동사의 다양한 면면도 생동감 있게 살펴볼 수 있게 됐다. 한 사람의 일생을 입체적으로 돌아보면 그가 살았던 시대사에 대한 이해의 폭도 크게 넓어진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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