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정치인 돌려쓰다 실패…장관엔 그 분야 최고를 중용하라"

입력 2022-03-10 17:46   수정 2022-03-11 01:52


20대 대통령선거가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한 윤석열 당선인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이번 대선은 윤 당선인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두고 치열한 네거티브 공방이 전개되면서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평을 들었다. 두 후보 간 득표율 격차는 불과 0.73%포인트에 그쳐 1997년 15대 대선(1.53%포인트) 때 역대 최소치를 경신했다.

한국경제신문은 이번 대선 결과가 가져다준 의미를 곱씹어 보고 윤 당선인과 차기 정부가 나아갈 방향을 듣기 위해 10일 서울 중림동 한경 사옥에서 전문가 좌담회를 열었다. 좌담회에는 이상돈 전 국민의당 의원(중앙대 명예교수)과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배종찬 인사이트케이연구소 소장이 참석했다.

이 전 의원은 국내를 대표하는 헌법학자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20대 국회의원 등을 지내 이론과 정치 현실을 두루 꿰뚫고 있다. 이 교수는 국회 입법조사처장과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장을 거친 정당정치 전문가다. 정치컨설턴트인 배 소장은 정치 관련 빅데이터 분석에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윤석열 당선인의 승리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배종찬 소장=정권교체 여론이 높았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역대 최고였지만 다른 어느 대통령보다 부정하는 여론도 그만큼 강했다. 부동산 문제가 역시 국민의 선택에 가장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는 마치 ‘쇠귀에 경 읽기’처럼 전문가 의견을 무시하고 극단적인 부동산 정책을 밀어붙였다. 윤 당선인이 선거 과정에서 종합부동산세 폐지까지 내건 것은 그만큼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음을 뜻한다.

이내영 교수=윤 당선인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높았다기보단 정부·여당이 마음에 안 드니 바꾸자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작동했다. 여당은 윤 당선인의 자질을 문제 삼으면서 ‘인물론’으로 돌파하려고 했지만 정권교체 여론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세대갈등으로 소위 ‘이대남(20대 남성)’ 등 젊은 세대가 민주당 지지층에서 이탈한 것 또한 특기할 현상이다.
▷윤석열 당선인과 이재명 후보의 득표율 차가 0.7%포인트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초박빙 대선’이었다.

이상돈 전 의원=윤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건 ‘여성가족부 폐지’는 결과적으로 이번 대선에 큰 도움은 안 됐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세대포위론’도 내부에서나 할 얘기인데 공개적으로 꺼내든 건 자칫 패착이 될 뻔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야권 단일화도 윤 후보에게는 적어도 호남에서 마이너스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당초 호남에서는 이 후보가 정동영·천정배 전 의원 등을 복당시키면서 민주당 내 초·재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불만이 팽배해 윤 후보가 최대 30%를 가져갈 것이란 말도 나왔었다.

이 교수=안 대표와의 단일화 효과는 데이터를 갖고 보다 정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제가 보기에도 단일화를 했다고 윤 당선인의 득표수가 늘어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향후 국민의당과 합당이 이뤄지면 국민의힘이 수구·보수라는 한계를 탈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일화에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본다.

배 소장=문재인 정권을 거치며 국민 여론은 말 그대로 ‘두 동강’이 났다. 이미 2019년 ‘조국 사태’부터 서울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민심이 이분되지 않았나. 문 대통령은 2017년 당선 직후 통합과 협치를 강조했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통합과 협치라는 과제는 이번 대선에도 그대로 남겨졌다. 윤 당선인뿐 아니라 민주당에 대해서도 여소야대 국면에서 협력적 태도가 강제됐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유권자들이 정말 지혜롭고 무서운 결정을 내려 양당을 모두 반성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이번 대선의 투표율(77.1%)은 2017년 19대 대선(77.2%)에 육박할 정도로 높았다.
이 교수=투표율이 예상보다 높아진 것이 꼭 긍정적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민주주의 제도에서 ‘선거는 축제’라고 한다. 그런데 이번 대선을 과연 축제라고 부를 수 있을까. 각 진영은 물론 지지자들도 마치 전쟁처럼 편을 갈라 대립했다. 국민 정서의 양극화를 부추긴 것은 유튜브 등 뉴미디어다. ‘정치 유튜버’가 주도하는 담론시장에서는 극단적인 목소리가 과대 대표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양당에 강경파가 득세하고, 조금 온건한 발언을 한 정치인에게는 ‘문자폭탄’이 쏟아졌다.

배 소장=대선이 ‘역대급 비호감 경쟁’으로 치러지면서 양당 모두 정책 차별화에 실패했다. 대규모 개발이나 퍼주기 등 ‘포퓰리즘’ 공약은 더 이상 유권자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두 후보 간 표차가 0.7%포인트에 불과한 것은 현재 선거제도의 수용도가 매우 낮을 수 있다는 단점을 부각시켰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선 대선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윤 당선인은 취임하면 다수 의석을 점한 야당과 마주하게 된다.
이 교수=여소야대 구조하에서는 아무리 대통령 권한이 많아도 국정 운영을 주도하기 어렵다. 윤 당선인이 민주당의 핵심 가치에 반하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면 쉽지 않을 것이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공약 중 실현 가능한 순서로 우선순위를 정해 국민과 야당의 동의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부터 추진해야 한다. 정말로 하고 싶은 다른 어려운 과제는 그런 뒤에 해도 늦지 않는다.

이 전 의원=윤 후보가 정권심판론을 등에 업고 승리한 것은 결국 ‘디폴트값(문재인 정부 이전)’으로 되돌려달라는 국민 요구가 컸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부동산 정책이 대표적이다. 이런 정책의 ‘리셋’을 윤 후보가 관철시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본다. 아무리 민주당이 170석이 넘는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어도 반대만 하긴 쉽지 않다.
▷차기 정부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배 소장=우선 소통이 중요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소통을 잘해 높이 평가받았다. 여소야대 상황이지만 국민과 원활한 소통을 통해 국정 지지도를 끌어올리면 이를 레버리지(지렛대) 삼아 민주당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인사를 얼마나 사심 없이 하는지도 중요하다.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검찰공화국’ 소리를 들으면 차기 정부는 망하는 것이다. 민주당 출신 인사라도 능력이 있으면 등용해 국민에게 감동을 주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이 전 의원=문재인 정부는 ‘인재풀’을 너무 좁게 써서 실패했다. 너무 많은 국회의원이 각 부처 장관에 임명됐다.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제의 본질을 살리려면 장관에 해당 분야 전문성을 지닌 ‘테크노크라트(전문 직업관료)’를 임명해야 한다. 정치권에서 이쪽저쪽을 오간 소위 ‘퇴물 정치인’을 중용하는 건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지키지 말아야 할 공약이 있나.
이 교수=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정책들은 교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윤 후보가 ‘적폐청산’을 언급한 것은 상당히 우려스럽다. 혹시라도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초래한다면 또 다른 분열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이 후보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연간 300조원 이상 재원이 소요되는 공약을 내놨는데 인수위원회에서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배 소장=자신의 공약과 문재인 정부 정책을 두고 적절히 선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치매 국가책임제’ 등 의료복지 정책은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어 나갈 것은 살려서 가야 국민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인수위에서 예산상 문제가 없고 실효성 있는 공약을 잘 가려내야 한다.

정리=오형주 기자 ceo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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