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켐생명과학이 추진했던 유상증자 실권주를 KB증권이 모두 떠안은 결과다.
시장에서는 향후 KB증권 보유분(分)의 향방에 따라 엔지켐생명과학이 적대적 인수합병(M&A) 등 경영권 이슈에 휘말릴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엔지켐생명과학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발단은 작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엔지켐생명과학은 이때 주당 5만9700원에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총 3164억원을 조달하겠다고 했다.
인도 제약사 자이더스 카딜라가 개발한 코로나19 DNA 백신 ‘자이코브 디’를 들여와 제조하고 판매하는 데 필요한 자금 마련 목적이었다. 주가가 6만원대 초반일 때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바이오 업종 주가가 급전직하하며 주당 5만9700원은 '넘사벽'인 상황이 됐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주당 3만1800원에 1685억원을 조달하는 쪽으로 물러섰다. 현재 엔지켐생명과학 주가는 주당 3만2600원(10일 종가 기준)이다.
눈높이를 절반 가까이로 낮췄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았다. 기존 주주들이 엔지켐생명과학 주식을 배정받지 않겠다고 해 대규모 실권주가 나왔다.
대주주인 손기영 회장도 자신에게 배정된 물량 58만5206주 가운데 10%만 참여하고 나머지는 한 자산운용사에 신주인수권을 매각했다. 이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손 회장은 10%에 해당하는 주주배정 유증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규모 실권주 발생에 일반 공모로 돌렸지만 경쟁률은 0.02대 1에 그쳤다. 결국 전체 530만주 가운데 청약율은 27%에 그쳤다.
나머지 실권주는 이번 유상증자를 주관한 KB증권이 모두 떠안았다. 실권주가 발생할 경우 이를 모두 사주겠다는 실권주 총액 인수 조건이 발동한 까닭이다.
결국 KB증권이 약 1212억원 규모 실권주를 떠안으며 엔지켐생명과학 지분 28%를 가져가게 됐다. 회사에 따르면 유증 후 손 회장의 지분율은 4.2%로 떨어졌다. 특수관계인 지분율을 모두 더해도 11.2%로 낮아진다.
업계에서는 이 때문에 적대적 M&A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KB증권이 추후 보유 지분 28%에 대한 매각에 나설텐데, 절반이 안 되는 11% 이상만 가져가도 엔지켐생명과학의 최대주주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주가가 워낙 낮아진 상황에서 의지만 있다면 엔지켐생명과학 최대주주에 오를 수 있다”고 했다.
회사 측은 가능성을 일축했다. 엔지켐생명과학 관계자는 “KB증권이 지분 매각에 나서긴 하겠지만, KB증권은 투기 세력이 아니다”며 “다양한 투자자가 지분을 나눠 가져 경영권 이슈가 발생하지 않도록 KB 측과 소통하고 있다”고 했다.
경영권 이슈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KB증권의 지분 매각 과정에서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회사 관계자는 “주가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유증을 통해 조달하려 했단 목표 금액에는 못 미치지만, 계획하고 있는 DNA 백신 사업은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코로나19 DNA 백신 사업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이미 메신저 리보핵산(mRNA) 코로나19 백신 등이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어서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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