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하나금융그룹 회장으로 내정된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의 최종 선임에 청신호가 켜졌다. 함 부회장은 하나은행장 시절 신입사원 채용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혐의로 기소됐지만 4년에 가까운 재판 끝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채용비리 관련 법적 리스크는 이사회의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은 함 부회장의 회장 도전에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부정 채용 증거 부족”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단독4부(판사 박보미)는 11일 업무방해·남녀고용평등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함 부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함 부회장은 하나은행장으로 재직하던 2015년 지인의 자녀 채용과 관련한 지시를 인사부에 전달하고 남녀 합격자 비율을 4 대 1로 하도록 지시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2018년 6월 재판에 넘겨졌다.하지만 재판부는 “지시가 있었음을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이어 “채용 절차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볼 만한 증거도 찾기 어렵다”고 했다.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하나은행의 남녀 차별적 채용 방식이 적어도 10년 이상 관행적으로 지속된 것으로 보이고, 은행장들의 의사결정과 무관하게 시행돼 피고인이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함 부회장과 함께 기소된 장기용 전 하나은행 부행장에게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하나은행 법인에는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함 부회장은 재판 후 취재진과 만나 “많은 심려를 끼쳐 대단히 죄송하다”며 “이번 계기를 통해 더 투명하고 공정한 경영을 하겠다”고 밝혔다.
함 부회장 회장行 초록불
이번 무죄 판결로 함 부회장의 차기 회장 선임을 둘러싼 불확실성도 해소됐다. 2015년 통합 KEB하나은행 초대 행장으로서 2019년까지 하나·외환은행의 결합을 지휘했던 함 부회장은 2016년부터는 지주 부회장을 겸직하며 하나금융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이끌어왔다. 독보적인 영업력과 소탈한 성격, 포용력 있는 리더십으로 일찌감치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뒤를 이을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함 부회장은 ‘시골 촌놈’이란 별명이 붙었을 만큼 자신을 낮추고 솔선수범해 후배들도 자연스럽게 일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덕장”이라며 “그래서인지 주변에 적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했다.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논산 강경상고를 졸업한 함 부회장은 은행권에서 ‘고졸 신화’로 불린다.오는 14일 파생결합펀드(DLF) 중징계 취소 소송 1심 선고가 남아 있지만, 채용 부정 개입 혐의를 벗으면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DLF 중징계 취소 소송은 앞서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이 승소한 경험이 있는 만큼 판례가 뒤집히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함 부회장은 이달 25일 하나금융 정기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으면 정식으로 회장에 선임된다. 관건은 주주들의 표심을 어떻게 사로잡느냐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이날 “일련의 기소와 제재는 지배구조의 실패를 반영한 것”이라며 투자자들에게 판결과 별개로 함 부회장의 회장 선임안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할 것을 권고했다. 앞서 ISS는 2020년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연임 당시에도 사법 리스크를 이유로 반대표 행사를 권고했지만 실제 안건 통과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외국인·기관투자가를 비롯한 주주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전했다. 함 부회장은 “재판 결과를 주주에게 상세히 보고하고 주총을 무난히 이끌어나가겠다”고 밝혔다.
빈난새/최예린 기자 binthere@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