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상상조차 불가능했습니다. 제게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은 같은 혈통이기 때문입니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핀테크 기업 레볼루트의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니콜라이 스토론스키는 최근 자사 사이트에 괴로운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러시아 출신 영국인이다. 러시아에 사는 우크라이나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러시아에서 다녔다. 스토론스키와 함께 레볼루트를 창업한 블라드 야첸코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우크라이나계 영국인이다.
지난달 러시아의 침략으로 시작된 양국 간 전쟁 국면 속에서 영국 최대 핀테크 업체 레볼루트가 상징적인 기업으로 꼽히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이유다. 스토론스키는 자사 사이트에 올린 편지에서 “이번 전쟁은 분명 잘못됐고 정말 혐오스럽다”며 “러시아와 벨라루스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레볼루트는 우크라이나 적십자에 200만달러(약 24억원)를 기부하기로 했다.
첫 직장은 리먼브러더스였다. 미국 대형 투자은행에서 트레이더로 일하면서 모스크바 뉴이코노믹스쿨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도 취득했다. 스토론스키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기 직전인 2008년 초 유럽계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로 적을 옮겼다. 크레디트스위스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를 겪은 그는 2013년 자신만의 금융기업을 설립하기 위해 전통 은행업계를 떠났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의 기성 은행권에 근무했던 경험은 좋았지만 금융위기 이후엔 각종 규제와 개입으로 재미와 성취감이 떨어졌다”고 회상했다. 마침 스토론스키는 당시 환전이나 송금 과정에서 매번 엄청난 수수료가 빠져나가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그는 역사적으로 기술 혁신에 의한 혼란을 피해온 은행업도 곧 대규모 변화에 직면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2015년 야첸코와 함께 탄생시킨 레볼루트를 통해 전통적인 은행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기로 했다. ‘금융의 주인은 소비자’라는 기치 아래 사람들이 모바일 앱에서 환전과 송금, 주식 거래 등을 저렴하고 손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레볼루트는 설립 3년 만에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에 올랐다. 러시아인 유리 밀너의 DST글로벌 등으로부터 총 3억4000만달러의 자금을 유치해 기업가치를 18억달러로 인정받으면서다.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로 합병한 뒤 러시아 에너지기업 가스프롬 등은 미국의 제재를 받았다. 그런데 2019년 무렵 스토론스키의 아버지가 가스프롬의 임원으로 재직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리투아니아 정부와 의회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레볼루트에 대해 정밀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러시아 크렘린궁과의 연결성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당시 스토론스키는 “아버지를 둘러싼 논쟁이 어이없다”며 상처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살인적인 근무 스타일로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일하기 일쑤였던 스토론스키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창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직원들의 주말 근무, 초과 근무 등을 당연시했다. 러시아인 특유의 잘 웃지 않는 무뚝뚝한 표정의 그가 “일을 더 하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직원들을 압박했다는 사실이 2019년 한 언론에 의해 폭로되기도 했다.
스토론스키는 “창업 초기 당시 직원들 중 일부가 거친 스타트업 문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는 회사 관행을 바꾸고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해엔 2200여 명의 직원에 대한 지분 참여 계획을 도입하며 여론을 달래기도 했다.
이는 레볼루트를 영국 최대 핀테크이자 스웨덴 클라르나(460억달러) 뒤를 이은 유럽 두 번째 핀테크로 우뚝 서게 했다. 레볼루트에 투자한 DST글로벌의 톰 스타포드 매니징파트너는 “레볼루트는 소비자와 중소기업을 위한 금융 서비스의 복잡성과 비용을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는 선구자”라며 “스토론스키가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하고 더 넓은 국가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여정에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