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기 위해선 ‘공약 거품’부터 걷어내는 게 급선무다. 선거전에서 쏟아낸 공약과 달리, 국정 운영은 철저히 현실에 발을 디뎌야 한다. 자영업자·소상공인 지원부터 그렇다. 임기 100일 안에 50조원 지원을 약속했지만, 한 해 예산의 8%에 이르는데도 재원 방안으로 ‘예산지출 효율화’만 내놓았을 뿐이다. 기존 예산 항목 하나 줄이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결국엔 국채로 충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랏빚 증가는 물론 금리 상승 등 부작용이 한둘이 아니다. 채무원금 감면 확대 등은 막대한 재원도 문제려니와 자칫 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 있다. 자영업 지원이 시급해도 보상 원칙을 명확히 하는 게 우선이다.
부동산 공약도 일산과 분당의 8배가 넘는 250만 가구 공급안을 내놨으나 부지 마련 등 문제가 적지 않다.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공약도 실행이 여간 어렵지 않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등 지역마다 도로·철도 공약 보따리를 풀었는데, 이행에 연간 예산의 절반을 투입해도 모자랄 판이다.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도 이보다 적은 부사관·장교 월급까지 연쇄적으로 올리다 보면 군 전력 증강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정부가 월 10만~40만원씩 지원해 10년 만기 시 1억원의 목돈을 쥐여준다는 ‘청년도약계좌’ 역시 연 수조원의 재원을 감안하면 말처럼 쉽지 않다. 윤 당선인이 노동개혁을 외치면서 노동이사제와 타임오프제를 주장하는 것도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정부 재정으로 택시 플랫폼을 만들고, 농업직불금을 두 배로 늘리는 공약은 그가 주장해온 ‘작은 정부’나 ‘시장주의자’와 맞지 않는다. 집권 뒤 사회적 논의기구 설치만 언급한 국민연금 등 연금개혁은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윤 당선인은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을 266조원으로 잡았다. 그러나 지역개발 공약을 제외하는 등 과소 계상했다는 게 중론이다. 현 정부의 재정 만능주의 탓에 국가채무가 올해 1000조원을 돌파하는 마당에 공약을 그대로 실행할 경우 나라 곳간에 더 큰 구멍을 낼 것이다. 지키기 어려운 공약이면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고 뺄 건 빼는 게 맞다. 그래야 윤 당선인이 어제 약속한 ‘일 잘하는 정부, 능력 있는 정부’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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